율곡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는 1583년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일본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제기한 주장이라 합니다. 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공식 기록인 선조실록이나 선조수정실록에 기록되지 않고, 그의 제자 김장생의 문집 <율곡행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후대 학자들과 문인들이 이이의 경연 발언에 바탕으로 후대에 10만 양병설이 구체화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특히 송시열 같은 인물들이 이를 더욱 강조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이의 십만양병설 주장의 진위를 놓고 논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십만양병설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니어도 그는 병조판서로서 충분히 국방력 강화를 강조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