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갈에 유래에 대하여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젖갈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젖갈에 대해서 유래나 종류, 제법등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쫀쫀한사마귀265입니다.
젓갈의 유래 젓갈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음식이다. 한나라 무제가 동이족을 쫓아서 산동 반도에 이르렀을 때, 어디서인지 코에 와 닿는 좋은 냄새가 나서 찾아보게 하니 어부들이 물고기 창자와 소금을 넣고 흙으로 덮어 둔 항아리에서 나는냄새였다. 이것이 바로 젓갈이었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꾀꼬리입니다. 젓갈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온 음식인데 한나라 무제가 동이족을 쫓아서 산동반도에 이르렀을때 어디에선가 좋은 냄새가 나서 찾아보게하니 어부들이 물고기 창자와 소금을 넣고 흙으로 덮어둔 항아리였는데 바로 젓갈이었다고 합니다 창란젓 명란젓 어리굴젓 새우젓 오징어젓 조개젓 꼴두기젓 멸치젓등 많지요
안녕하세요. 얄쌍한왜가리259입니다.
젓갈은 어류, 패류, 어류의 내장 등에 소금을 가하여 부패균의 번식을 억제하고 어패류 자체의 효소와 외부 미생물의 효소 작용으로 육질을 분해 시킨 독특한 맛과 풍미의 발효식품이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젓갈의 원조라고 여겨지는 가룸이란 것이 있었으며, 인도, 베트남, 태국 등에도 젓갈을 사용했었다.
●젓갈의 유래는 더운 지방 해안가에서 한번에 많이
잡힌 어패류를 썩지 않도록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한 방법으로 발견됐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 우리나라에서 젓갈에 관한 가장 앞선 기록은
<삼국사기>(1145년)다.
● 젓갈은 새우젓, 조개젓과 같이 어패류에 소금만 넣어
발효시킨 것과 명란젓, 창란젓, 오징어젓처럼 소금에
고추가루, 마늘, 생강 등 양념을 섞어 숙성시킨 것으
나뉜다. 곡류와 부재료를 혼합해 익힌 식해도 크게
젓갈의 범주 포함된다.
2. 젓갈의 유래와 기원
3. 한국의 젓갈
● 한반도는 3면이 바다이면서 한류와 난류의 교차로 특히 어자원이 풍부해 젓갈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는 동물성 단백질 급원이 적은 쌀 주식 편중인 식생활 패턴이 일반적이었다. 쌀을 단백질의 주요한 섭취원뿐만 아니라 에너지원으로 하는 식생활로 많은 양의 밥을 먹기 위해 염기가 있는 부식이 식욕증진제로서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젓갈문화는 곡물문화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우선 맛이 그렇고 생리적, 영양적인 면에서도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다. 밥은 짠맛의 반찬과 잘 어울린다. 미각으로 보았을 때 순한 맛의 밥은 짭짤한 김치나 젓갈과 함께 먹었을 때 속이 개운함을 느끼게 하며, 생리적으로도 밥, 즉 곡물에는 나트륨(Na) 함량이 부족하여 체내 삼투압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짭짤한 찬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방별 젓갈의 종류안녕하세요. 나는어디로입니다.
젓갈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음식입니다. 한나라 무제가 동이족을 쫓아서 산동 반도에 이르렀을 때, 어디서인지 코에 와 닿는 좋은 냄새가 나서 찾아보게 하니 어부들이 물고기 창자와 소금을 넣고 흙으로 덮어 둔 항아리에서 나는냄새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젓갈이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CBJ입니다.
젓갈의 유래
젓갈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음식이다. 한나라 무제가 동이족을 쫓아서 산동 반도에 이르렀을 때, 어디서인지 코에 와 닿는 좋은 냄새가 나서 찾아보게 하니 어부들이 물고기 창자와 소금을 넣고 흙으로 덮어 둔 항아리에서 나는 냄새였다. 이것이 바로 젓갈이었다고 한다. 오랑캐를 쫓다가 얻은 음식이라 하여 젓갈을 '축이(逐夷)'라 이름 지었다. 이 같은 기록으로 미루어 동이족이 젓갈의 문화를 유지하고 발달 시켜왔음을 알 수 있다.
젓갈의 종류오징어젓
임진왜란 때 원병 온 명나라 장수가 의주에 피난 가 있는 선조에게 '계두'라는 희귀한 음식을 선물로 바쳤다. 계수나무 속에서 자라는 벌레를 볶은 것으로, 월남 왕이 공무로 바치는 귀물이었다.
한데 선조 임금은 오래도록 주저하고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 대신 선물에 대한 반례로 '십초어'국을 보냈는데, 명장 역시 난처한 빛을 보이며 먹지 않았다 한다. 십초어란 바로 오징어다. 다리가 여덟 개인 문어나 낙지를 팔초어라 한고, 다리가 열 개인 오징어를 십초어라 부른 것이다. 실은 오징어의 다리도 여덟 개다.양쪽으로 별나게 긴 두 다리는 다리가 아니라 팔이다. 그 긴 팔은 먹이를 잡아먹을 때 쓰며, 사랑을 나눌 때 암컷을 힘껏 끌어안는 수단으로도 쓴다하여 '교미완'이라고 부른다. 동해안에서는 부녀자가 오징어 팔을 먹으면 흉이 된다는 터부가 있다. 반면에 오징어 팔 서른세 쌍만 뜯어먹으면 속살이 찌고 남편한테 굄을 받는다 하여 오징어 말리는 해변에 오징어팔 도둑이 성행했다고 한다. 노련한 어부는 몸에 오색이 영롱한 오징어가 걸려들면 다시 환생시켜주는 것이 도리하고 말한다. 오색 빛이 나는 것을 공작오징어라 속칭하는데, 발정하여 암컷을 찾아다닐 때 잠시 발광하는 수놈의 체색으로 인한 것이다. 공작오징어를 잡지 않는 것은 오징어의 발정을 보장해 주는 인간적 배려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번의 사랑에 30만∼50만 개의 오징어알을 낳는다는 수자원적인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어리굴젓
해산물은 민족이나 나라에 따라 기호가 무쌍하다. 한데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한 결 같이 즐겨 먹는 것이 꼭 한 가지 있다. 굴이다. 토머스 플러가 '사람이 날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육류가 굴이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유럽에서 생식하는 단 한 가지 해산물이 굴이었던 것 같다.굴은 이미 로마시대부터 양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서양에서는 연중 이름에 'R'자가 안든 달 에는 굴을 먹지 말라는 속전이 있다.
5월에서 8월 사이가 해당되는데, 굴의 산란기라서 맛도 떨어지고 독성이 있기 때문이다.셰익스피어의 (맘 내키는 대로)에 굴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더러운 굴 껍데기 속에 진주가 박혀 있듯, 가난한 집에도 마음이 풍요로운 정직한 사람이 살고 있다.' 입이 무거운 사람을 '굴 같은 사나이'라 하고, 정조가 강한 여인을 '굴 같이 닫힌 여인'이라한다. 도덕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누려온 굴이다.새우젓
중종 때 판서를 지낸 청빈한 선비 김안국이 인심을 잃어가며 재물을 모으고 있는 한 친구에게 훈계의 편지를 띄었다.
그 편지 가운데 "밥 한 숟가락에 새우젓 한 마리만 앉으면 먹고 살 수 있는데" 하는 대목이 있다.새우젓은 우리나라 사람이 흰밥을 목구멍에 넘길 수 있는 최소 단위의 건건이요, 오랜 빈곤 수천 년을 살아낼 수 있었던 최저의 생존조건이었다.
그래서인지 옛날 산촌에 새우젓장수가 들르면 처녀는 중신아비 들르는 것보다 반갑고, 서방님은 장모 들르는 것보다 반가웠다는 속담이 있다.새우젓장수는 부잣집 사랑에 모셔졌고, 젊은 무당을 곱게 단장시켜 슬며시 그 방에 넣어주곤 했다. 삼남 지방의 속어에 '덤통 웃음'이라는 말이 있다. 목적을 위해 계략적으로 웃는 웃음이다. 새우젓장사는 젓갈이 들어 있는 알통과 젓갈국물이 들어 있는 덤통 둘을 나란히 메고 다녔다. 젓갈을 산 사람들이 덤통을 바라보며 히죽이 웃어 새우젓장수의 애간장을 태우면, 장수는 덤통을 열고 젓국을 더 펴주었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젓갈의 활용
젓산동 반도는 우리겨레의 활동 무대였으므로 우리 조상은 일찍부터 젓갈을 조미료로 사용하였다.
B.C 3∼5세기의 중국『이아(邇雅)』라는 사전에는 "생선으로 만든 젓갈을 '지( )', 육으로 만든 젓갈을 '해( )'라 한다"고 하였고, 그 후의 문헌에는 지( ), 자( ), 해( ) 등이 나온다. 5세기경의 『제민요술』에는 "장에는 누룩과 메주, 술, 소금으로 담그는 직장법과 수조어육류, 채소, 소금으로 담그는 어육장법이 있다."고 씌어 있다.
또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신문왕 8년(683년)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맞이할 때 납폐품목에 '장'과 함께 '해( )'가 적혀 있다. 해는 젓갈을 말한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는 어패류를 소금에만 절이는 저염해, 젓갈과 절인 생선에 익힌 곡물과 채소 등을 합하여 숙성시키는 식해(食 )로 크게 나뉘었다.
고려시대의 문헌에는 정사, 의서류, 및 문집 등에 젓갈류의 식용배경 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하고 젓갈의 종류도 다양해져 제사상에도 올렸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젓갈과 관련된 자료들은 일반 민간인에 의해 쓰여진 각종 일기류에서도 자주 발견된 것을 알 수 있어 그 식용범위가 비교적 보편화되고 그 종류 또한 매우 다양하였음을 알수 있다. 조선시대의 젓갈 담그는 법은 소금에만 절인 것, 소금과 술과 기름 등을 섞어서 담근 것, 소금과 누룩에 담근 것, 소금, 엿기름, 찹쌀밥 등을 섞어서 담근 것 등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고 그 종류는 현재보다 훨씬 다양하였다고 한다. 또 젓갈을 담글 때 술이나 누룩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미루어 주조법에서 연유한 것으로도 추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