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영조 때 세금제도인 균역법의 정의와 배경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조선시대 세금을 걷는 균역법이 시행된 것은 영조 대의 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실패한 조세 개혁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제도라고 하던데요.
균역법을 실시한 배경을 간단하고 알기 쉽게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세개혁 일환 입니다
조선의 군역은 몸으로 떼우거나 포(옷감)을 내는 것이 핵심인데 이를 1명이 1년에 2필의 군포를 내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를 1포로 줄이는 것입니다. 양인의 군역 부담을 더는데 있습니다.
줄이면서 생긴 부족분은 어세(어업) 염세(염전;소금) 선박세(배) 등으로 충당하였습니다
조선후기 군역(군대를 가야하는 의무, 혹은 일)에는 2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양역화(良役化)라고 하여 조선초기만 해도 모든 백성들(노비제외)이 담당해야 하는 의무였지만, 차츰 양반들이 빠져가면서 양인(良人)들만 지는 의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양역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부세화(賦稅化)의 문제로 실제로 군 복무를 하지 않고 대신에 1년에 어느정도의 돈이나 물품을 납부하고 군역을 면제 받는 것입니다.
라는 답변을 구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균역법은 백성들에게 부과된
군역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것으로 조선 후기 영조 시기에 시행된
재정 제도입니다. 조선은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양인 남성에게 군역을
부과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전기 군역 제도의 원칙은 농민 장정은 모두 군역의 대상자가 되는 양인 개병제도였습니다. 16세기 군포 2필을 납부하면 군역을 면제해주는 방군수포제를 실시, 17세기 지방 아전들의 인징, 족징, 황구첨정, 백골징수 등 폐단이 나타났고 이에 정부에서 개선책을 논의한 결과 모든 가호에 군포를 징수하자는 호포론과 토지를 기준으로 군포를 납부하자는 결포론 등이 거론, 양반과 지주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영조는 절충안으로 균역청을 설치해 군포 2필을 군포 1필로 납부하는 균역법을 실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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