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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혹한 쇠똥구리
고혹한 쇠똥구리23.03.31

조선시대에도 변호사가 있었나요?

지금 티비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조선변호사라는 건데 정말 조선시대에도 변호사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그냥 허구로 지어낸 이야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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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2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3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외지부라고 있었습니다.

    외지부란 사또처럼 송사를 맡은 사사은 아니지만 법률적 지식이 있고 글을 쓸 수 있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소장을 대신 써주고 실제로 재판이 시작되면 법률대리인 역할을 맡아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우리 생각과는 달리 소송이 빈번했습니다. 복잡한 법적 절차와 재판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 역할을 했던 게 바로 외지부였죠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우리 생각과는 달리 소송이 빈번했습니다. 특히 가장 큰 재산 가치를 지닌 노비들은 상속하거나 분배할 수 있었는데요. 이런 과정에서 소송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복잡한 법적 절차와 재판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 역할을 했던 게 바로 외지부였죠. 그리고 하의도에서 올라온 섬사람들의 대표자가 홍씨 집안을 제소한 것도 실록에 기록된 엄연한 사실입니다. 선조의 딸 정명공주가 민가에 시집간 무렵부터 한국전쟁 이후까지 무려 330년 동안 이어진 소송도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 조선시대에도 변호사는 있었다!_ 정명섭 작가 인터뷰 | 은행나무출판사 (ehbook.co.kr)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외지부>

    도관(都官)은 법률을 관장하는 형부 소속 관청, 지부(知部)는 판결을 맡은 종3품 관리를

    일컬었다. 외지부는 도관 밖, 즉 민간에서

    '지부' 노릇을 하는 자를 뜻했다.

    소장을 대신 써주고 소송을 조언했던 외지부는 요즘 말로 하면 ‘야매 법조인’이었다.

    -출처:나무위키


  • 조선시대에는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법률 언어들은 존재할 수도 없었습니다.

    거의 지배층인 양반들이 마음대로 지배하는 나라였습니다.

    한반도에는 4계급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에

    지배층인 양반과 중인을 제외한 피지배층인 상민과 천민은

    매우 힘든 생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변호사는 사치에 불과한 언어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헌법이나 법률, 인권, 민권, 법치주의, 입헌주의 같은 단어조차 없었던 나라입니다.


    그런 단어들은 모두 일본이 만든 것이고, 관련 제도도 모두 일본이 만든 것입니다.

    조선시대는 사또 맘대로였어요.

    사또와 아전들이 맘대로 했기 때문에 <유전무죄,무전유죄>가 당연시되던 나라였습니다. 라는 답변을 구해 왔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결론으로 보면 사실 입니다. 양반들도 서로이 노비나 여러가지 문서들을 가지고

    진위여부 사건을 맏아서 해결을 해주는 변호사가 있어서 소송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많은 기록들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2세기에 지금의 변호사의 역할을 수행했던 외지부라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문맹이거나 법률에 무지한 이들을 대신해서 대가를 받는 조건으로 소송을 대리하던 법률대리인들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외지부 라고 하는 직업 인데여. ‘외지부’란 밖에 있는 지부(知部)라는 뜻인데, 원래 이 명칭은 장례원(掌隷院)을 도관지부(都官知部)라고 지칭한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중종실록 5년 3월 26일(신사)』 장례원은 노비 문서와 노비 관련 소송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관사였는데 조선시대의 부(富)는 토지와 노비의 양에 달렸으므로, 당시에 이 관사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변호사가 법률지식이 부족한 약자를 도와 법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순기능이 있는 것처럼 당시의 외지부 또한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허구라고 봐야겠지요. 조선시대 지방관은 백성을 다스리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의 위에서 강력한 힘을 자랑했습니다. 잘못 말을 했다가는 태형을

    받게 되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백성을 변론 할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었고 백성들, 노비들은 그냥 팔자려니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영조는 신문고라는 제도를

    만들었지만 만약 신문고를 울렸는데 사실이 허위거나 별 내용이 아니면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참 억울한 사연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종실록 9년 8월 15일조에 '무뢰배가 송정에 와 오래버티고 있으면서 혹은 품을 받고 송사를 하기도 하고 혹은 사람을 부추겨 송사를 일으키게 하여 글재주를 부려 법을 우롱하며 옳고 그름을 뒤바꾸고 어지럽게 하니 시속에서 이들을 외지부라 한다,

    쟁송이 빈전해지는 것이 실로 이 무리 때문이니 마땅히 엄하게 징계하여 간교하고 거짓된 짓을 못하게 하라' 기록되어있습니다.

    소송을 대신해주고 법조문을 거론하여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며 승소하면 그 대가를 받는 사람을 변호사라고 한다면 조선에서는 이들을 외지부 라 불렀습니다.

    외지부란 밖에 있는 지부라는 뜻으로 장례원을 도관지부라고 지칭한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장례원은 노비 문서와 노비 관련 소송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관사입니다.

    조선시대의 부는 토지와 노비의 양에 달렸으므로 당시 이 관사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장례원에 속한 관원도 아닌 일반인이 법률을 암송하며 문서를 위조하여서 송사하는 자를 교사하고 송사에서 이기면 자기가 그 이익을 취하였기 때문에 이들을 장례원 밖에 있는 지부 즉 외지부라 불렀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형법, 민법 등 법률 체계가 구축되어 있었으며, 그에 따라 변호사도 존재했습니다. 변호사는 주로 법률 상담 및 사건 처리를 담당했고, 특히 고문을 맡아 궁중에서 일어난 법적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법원도 있었으며, 변호사는 이를 통해 소송을 제기하고 변론을 진행했습니다.

    따라서, '조선변호사'라는 드라마는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변호사들의 역할과 활동을 소재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드라마에서 다루는 내용과 인물은 허구로 창작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