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개항이후 조선은 1880년대 초부터 통리기무아문을 설치를 필두로 본격적으로 개화정책을 추진합니다. 그런데, 개화파들은 청의 양무운동을 모델로 동도서기적 개혁을 추진하고자한 온건개화파와 일본의 네이지유신을 모델로 하는 급진개화파로 분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임오군란 이후 친청 민씨세략과 온건개화파가 정권을 잡고 급진개화파를 압박하자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결국 개화자금 마련을 위해 일본에 차관 도입이 실패한 김옥균 등 급진개화파가 1884년 우정국 낙성석을 계기로 정변을 일으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