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런 문제를 트집잡을 거였다면
광해군이 즉위하기 전에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장자도, 적통도 아니었지만 이미 오래 세자로 있었고
왜란 때의 활약으로 모든 신료들이 좋게 봤기에
영의정 유영경의 무리들을 제외하고는
광해군을 반대하는 신하들이 없었습니다.
물론 광해군은 정통성에 콤플렉스를 가진듯 합니다.
그가 자신의 생모인 공빈 김씨를 공성왕후로 높이고
여러 차례 신하들에게 존호를 받고
음양술에 빠져 궁궐 공사에 매진했던 것이
그 때문이 아닐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