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연합군과 일본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본은 15만 대군을 이끌고 정유재란을 일으키지만 곳곳에서 조명연합군에 패하고 더군다나 통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왜군 수장들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서두러 퇴각하기 위해 왜군들은 순천 사천 울산으로 모여들었고 조명연합군은 순천왜성을 공격하여 고니시 유키나와 군대를 고립시킵니다. 이를 구하기 위해 고성과 사천에서 올 것을 예상한 이순신 장군은 노량에서 일전을 벌여 왜군 500척 중 200척을 난파하고 150척을 파손시켰으며 150척은 도망가기에 급급하였습니다. 이 해전으로 피해는 조선군 150-300명 전사 전선 0-4척 파손 명나라는 병사 200-350명 전사 전선 1-2척 손실인 반면 일본은 시마즈 군사 절반 약 1만 3천명 사살 전선 200척 침몰 전선 100척 나포 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