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만주를 일본제국의 사활을 결정하는 특수지역으로 인식했던 것입니다. 1차대전에서 독일의 패망은 독일을 모델로 생각해온 일본군의 젊은 장교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들은 총력전으로 수행되는 현대전에서는 자급자족적인 제국을 건설함으로써, 군사력뿐 아니라 총체적인 전쟁수행능력을 제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런 그들에게 만주는 일본제국주의의 사활을 결정짓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만주가 일제에게 생명선이었다면, 1930년대의 만주는 동아시아의 피압박민중에게 일본 제국주의와 첨예하게 대치하는 새로운 전선이었습니다. 새로운 대치선 만주는 동아시아 변혁의 핵으로 떠올랐을 뿐 아니라 분단된 남과 북의 정치체제의 싹이 발아한 곳이기도 합니다.그래서 일본은 대동아전쟁의 일환으로 일본 제국이 1931년 9월 18일 류탸오후 사건(柳條湖事件)을 조작해 일본 관동군이 만주를 중국 침공을 위한 전쟁의 병참 기지로 만들고 식민지화하기 위해 벌인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