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의병과 승려들의 활약이 뛰어났다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였나요?
임진왜란 당시 군인들만의 활약뿐만아니라 의병들과 승려들의 활약도 매우 뛰어났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의 활약은 어느 정도였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국 각 지역의 유학자나 승려들은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군에 대항하였다. 의병은 임진왜란 초기에 관군이 재정비하여 일본을 물리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은 2만 2,600여 명에 달하였으며 이들은 일본군에 비해 무기나 전술적인 면에서 열세를 면할 수 없었지만, 지리에 익숙하고 적절한 전술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1592년 4월 일본은 20여만 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조선을 침공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을 거친 9년간의 조일 간의 전쟁이었고 전쟁 초기에 준비되지 않은 관군은 연패를 거듭했고 순식간에 전 국토가 일본의 침략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지역의 유학자들 가운데 널리 알려져 있던 선비들이 제자들 및 서로 친분을 나누던 동료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또한, 승려들도 호국정신을 기치로 승병을 조직하여 각지에서 왜적을 물리치는 데 앞장섰다. 이들은 각기 집안의 노비나 거주지의 마을 사람들을 모아 의병을 조직하고 지역의 방어 시설을 구축하여 일본군에 대항하였다. 의병들은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일본군의 중요 교통로를 차지하여 임진왜란 초기에 관군이 재정비하여 대일항전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임진왜란 의병 중 가장 먼저 일어난 의병은 경상남도 의령의 곽재우였다. 곽재우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의령·삼가·합천·현풍 등지에서 승전하여 ‘홍의장군’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또한, 경상남도 합천의 정인홍, 경상북도 고령의 김면 등도 명망 있는 사족들을 중심으로 의병을 조직하여 관군과 협조하며 가야산을 중심으로 거창·고령·성주 등에서 왜적에 대항하였다. 경상북도 영천에서는 권응수가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협동하여 영천을 수복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출처: 지역N문화 난극복 민중의 힘,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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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국 각 지역의 유학자나 승려들은 의병을 조직해 일본군에 대항했습니다.
의병은 임진왜란 초기에 관군이 재정비하여 일본을 물리칠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은 2만 2,600명에 달했고 이들은 일본군에 비해 무기나 전술적인 면에서 열세를 면할수 없었지만 지리에 익숙하고 적절한 전술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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