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슬기로운줄나비104
슬기로운줄나비10423.04.15

이성계가 반란을 한 이유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위화도 회군을 결심하게 된 사회적 배경과 이유가 궁금합니다.

단순히 자기가 왕에 오르고 싶어서 그런걸까요?

그러고 저항이 있었나요? 아니면 바로 고려가 망했나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1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한 이유는 명령대로 명나라를 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요동정벌론에 반대한 이성계는 정벌군이 압록강 하류 위화도에 이르자 진군을 멈추고, 좌군도통사 조민수와 상의하여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으며,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부적당하고, 요동을 공격하는 틈을 타서 남쪽에서 왜구가 침벌할 염려가 있으며,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라 활의 아교가 녹아 무기로 쓸 수 없고, 병사들도 전염병에 걸릴 염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며 요동정벌은 불가능하다고 상서(上書)로써 회군을 청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성계가 4불가론을 말하고 명나라랑 싸울려는 군대를 위화도에서 회군해서 고려로 들어들어옵니다.

    또 정치적 이유도있습니다. 최영을 위시로 한 고려의 기존 권문세족이 집권한 상황을 뒤집을 쿠데타를 일으킨 겁니다. 요동정벌이 정말 무리수라고 생각해서 그때를 기회삼아 쿠데타를 일으켰다고도 생각됩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반역이고 반란이었습니다.

    장군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죽을 것을 두려워 전쟁에 임하지 못하고

    자기의 군사로 왕 이 된것이라 주관적인 생각을 해 봅니다.


    중국 대륙에 새롭게 들어선 명나라가 고려에 철령 이북(쌍성총관부)를 요구하자 최영과 당시 왕이였던 우왕은 요동 정벌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이성계는 4가지 이유를 들어 정벌을 강하게 반대하였지만


    최영은 이성계의 주장에 하나하나 맞서며 반대합니다.

    이성계는 자신보다 상관이자 실세였던 최영의 말을

    거스를 수가 없었고 결국 요동을 정벌하기 위해 떠납니다. 이성계는 위화도에 도착했고 비가 쏟아져 화살이 녹슬고 여름철이라 전염병까지 돌아서 더 이상의 진군이 어려워집니다. 이성계는 개경에 있는 우왕과 최영에게 회군을 요청하지만 계속 전진하라는 명령이 내려왔고 결국 이성계는 휘하의 장수들을 설득하여 군사를 돌립니다. 최영은 이성계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군사를 동원하지만 나라의 모든 군사가 이성계에게 있어서 막을 수 없었고 결국 이성계가 반란에 성공하면서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라는 답변을 구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성계는 홍건적의 난과 왜구 격퇴에서 무공을 세워 유명해졌으며 백성들의 민심을 얻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요동정벌을 빌미로 대규모의 군대까지 통솔할 수 있게 되면서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죠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왕과 대장군 최영장군의 강권에 의해 명나라를 치기 위해 이성계를 대장군으로 삼고 북벌에 나서게 되는데 이성계는 4불가론(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 여름 장마철이라 전쟁을 수행하기 적합치 않다. 농사철에 거병을 하면 농사를 망치게 된다. 북벌을 하면 남쪽에서 왜구들의 노략질이 잦게 된다.)를 내세우며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역성혁명을 이루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과 군사령관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 개경으로 쳐들어와



    정부를 무력으로 뒤엎은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회군 자체가 사전에 은밀히 모의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회군이 결정되고 얼마 되지 않아 이성계의 사병이었던 동북면 군사들이



    추가 합류한데다, 400km 가까운 길을 단 열흘만에 5만 장졸과 돌아온거 보면



    뭔가 계획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방석과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서 일으킨 반란입니다. 이방석이 그의 큰 적이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요동정벌의 결정을 반대하여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에 거역하는 것이 한 가지 옳지 못함이요,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이 두 가지 옳지 못함이요, 온 나라 군사를 동원하여 멀리 정벌하면, 왜적이 그 허술한 틈을 탈 것이니 세 가지 옳지 못함이요, 지금 한창 장마철이므로 활은 아교가 풀어지고, 많은 군사들은 역병(疫病)을 앓을 것이니 네 가지 옳지 못함입니다.”라는 사불가론(四不可論)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회군을 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성계는 최영과 달리 요동 정벌 전 부터 요동 공격을 반대한 이른바 4불가론을 제시합니다. 4불가론의 자새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以小逆大(이소역대), 소국이 대국을 거역함은 불가하다
    夏月發兵(하월발병), 여름에 군사를 일으킴은 불가하다
    擧國遠征(거국원정) 倭乘其虛(왜승기허), 거국적으로 원정할 경우 왜구의 침입 우려가 있다
    時方署雨(시방서우) 弩弓解膠(노궁해익) 大軍疾疫(대군질역), 시기는 장마철이라 활이 녹고 대군이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위화도 회군의 대의 명분이 4대 불가론이며 심지어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도 여러 번 조정에 철수 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 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성계는 아마도 위화도 회군을 통해서 역성 혁명의 결심을 굳히게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