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대표적인 석탑과 승탑은 어떤게 있는지 궁금해요
신라양식을 일부 계승하면서 그 위에 독자적인 조형감각을 가미하여 석탑이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고 승탑은 선종의 유행과 관련하여 석종형식으로 변했다고 하는데요. 궁금한게 이 시기에 대표적인 석탑과 승탑은 어떤 종류가 있는지요?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불교의 교세는 고려시대에 와서 절정에 달하였다. 따라서 불교적인 조영(造營) 작업도 거의 고려 일대를 통하여 국가적 혹은 개인적으로 되었으며, 그 결과 오늘날 많은 석탑과 유례가 남아 있다.
고려시대의 특징은 우선 석탑건립 이전 시대에 비하여 전국적으로 확산, 분포된 점이다. 다만 수적으로는 왕도(王都)인 개경 부근이 우세한 면이 없지 않다. 물론 이러한 분포상의 변화는 시대상의 변혁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즉, 왕실불교적 위치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불교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대중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좀더 고려시대적인 조영은 역시 전국적인 형태를 띠게 되는데, 특히 태조 왕건(王建)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도 반영되어 있듯이 도참사상(圖讖思想)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즉 개경의 7층석탑의 건립과 연관되는 것으로 짐작된다. 옛 도읍인 서경(西京) 구층탑의 건립, 신라의 고도(古都) 경주의 황룡사구층목탑(皇龍寺九層木塔)의 중수, 백제 옛도읍 부근의 거대한 익산왕궁리오층석탑(益山王宮里五層石塔)의 예, 그리고 후백제군을 격파한 곳에 개태사(開泰寺)를 건립한 것 등은 모두 그러한 면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더구나 주목되는 점은 고려시대의 조탑활동에 순수한 지방세력 내지는 민중이 대거 참여하였다는 사실이다. 개심사지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의 명문(銘文), 정도사지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안에서 발견된 조성형지기(造成形止記)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고려시대에는 대부분 그 지방민의 발원에 의하여 석탑이 건립된 것으로 믿어진다.
이것은 고려시대 석탑을 전국적으로 분포시키는 데 보다 더 영향력을 끼쳤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고려석탑의 양식상에 다양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즉, 전대의 왕도 중심의 일률적인 탑파 건립에서 벗어나 각 지방의 토착세력이 건탑(建塔)에 관여하였을 때 일률적인 규범보다는 각기 제 나름대로의 특징이 반영되어, 곧 다양성 있는 건탑의 양상을 보이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시대의 석탑은 그 조형양식상에 다양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신라의 고도인 경주를 중심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신라석탑계를 충실하게 계승하면서 세부에 있어 변형을 보이고 있다.
개심사지오층석탑은 연화문이 조식(彫飾)된 판석 1매를 끼워 탑신굄대를 삼고 있으며, 정도사지오층석탑은 하층기단 면석 각 면에 3구씩의 안상이 있고 그 내면에 지선(地線)으로부터 귀꽃무늬가 조식되어 있어 주목을 끈다.
또 개성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남계원지 칠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현화사칠층석탑(玄化寺七層石塔)·흥국사석탑(興國寺石塔) 등과 같이 일반형 방형중층탑이 고려석탑으로서의 특징을 지니면서 유행하였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도 하남 동사지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보물, 1966년 지정)·천흥사지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금산사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청양 서정리 구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등 상당수의 일반형 석탑이 건립되었는데, 모두 신라식을 계승하고는 있으나 옥개석의 낙수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추녀가 직선에서 곡선으로 변하였다든가 단층기단이 많아지고 상층기단갑석의 부연이 형식화되거나 생략되는 등 부분적으로 약화되고 둔중해진 고려석탑 특유의 작풍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고려사회의 새로운 성격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10세기 후반부터는 양식상 전대에 비하여 현저한 변화를 보인다. 그러한 고려석탑의 새로운 양상으로서 첫째, 지방적인 특색이 현저해진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석탑에서 지방적 특색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설령 신라의 중심이었던 경주를 벗어난 지방에 석탑이 건립되었다 하더라도 중앙인 경주지역의 양식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각 지방에 따라 각기 특색 있는 양식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신라의 고토인 경상도지방에서는 신라시대 석탑의 계통을 충실하게 계승한 데 비하여 백제의 고토인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지역에서는 백제시대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예가 많다.
무량사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부여 장하리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서천 성북리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계룡산 청량사지 쌍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 등과 전라북도의 익산왕궁리오층석탑·정읍 은선리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귀신사삼층석탑·죽산리삼층석탑 등 백제계의 석탑은 특히 옥개석의 구성에서 백제양식을 본받고 있다.
즉 옥개석 양식이 모두 판석형의 낙수면석이고, 대개의 경우 그 밑의 받침부가 별석으로 조성된 목조가구의 일면을 보이고 있는 점 등이 미륵사지석탑과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의 각 부를 모방하고 있어 ‘백제계의 고려석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백제 고토에서만 볼 수 있는 백제계 고려시대 석탑의 건립 현상은 고려의 불교가 전대인 신라시대의 중앙집중에서 벗어나 좀더 지방에까지 파급되고 한층 토착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고려시대의 석탑에서는 신라시대에 볼 수 없었던 각양각색의 새로운 특수형식의 탑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특수한 양식이란 방형중층의 일반형 석탑의 형식에서 벗어나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새로운 특수한 형식이 가미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러한 예는 신라시대부터 나타나던 것이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도 사사자석탑의 양식을 계승한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이나 홍천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보물, 1971년 지정)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전대의 이형석탑의 양식을 계승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라적인 이형석탑의 예는 사실상 극히 한정되고 개별적인 것에 그쳤으며, 그에 비하여 고려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양식은 새로운 유형을 이루는 데까지 진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방형에서 다각형으로, 그리고 다층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석탑 중에서 8각형의 석탑은 나름대로 하나의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그에 비하여 원광사지육각칠층석탑이나 금산사 육각 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등 6각형의 석탑은 좀더 특이한 형이라 할 수 있다.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보현사팔각십삼층석탑 등은 일반형 석탑처럼 기단부 위에 탑신과 상륜부를 건조한 형식이지만 8각형의 평면을 이룬 점이 특이하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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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종 목 국보 제48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1 월정사
시 대 고려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월정사 안에 있는 탑으로, 그 앞에는 공양하는 모습의 보살상이 마주보며 앉아 있다.
탑은 8각 모양의 2단 기단 위에 9층 탑신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을 새겨 놓았고, 아래·위층 기단 윗부분에는 받침돌을 마련하여 윗돌을 괴어주도록 하였다. 탑신부는 일반적인 석탑이 위층으로 올라 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과 달리 2층 탑신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으며, 1층 탑신의 4면에 작은 규모의 감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계단 모양의 받침을 두지 않고 간략하게 마무리하였고, 가볍게 들려있는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아 놓았다.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서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고려시대가 되면 4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석탑이 우리나라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하게 되는데, 이 탑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 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당시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이 착실하여 다각다층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또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을 통해 금속공예의 수법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2.여주 고달사지 승탑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고달사지에 있는 있는 고려시대 승탑(僧塔)이다. 승탑(부도)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하는 묘탑(廟塔)으로, 고승이 입적한 후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존경심을 나타내기 위해 세워졌다. 여주 고달사지 승탑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승탑의 주인과 건립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체적인 제작 기법 등을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 초기인 10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승탑의 구성과 양식
화강암으로 제작된 팔각원당형 승탑으로, 높이는 3.4m이고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승탑의 기본형인 팔각원당형 승탑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조각의 세부 수법에서 고려시대 양식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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