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최초의 화폐인 건원중보는 어떤 배경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최초로 화폐를 만들었다면 그 이전에는 화폐가 없었는데 어떤 필요성을 느껴서 만들었다는 것 같습니다. 해서 당시에는 어떤 이유로 화폐를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도읍지인 개성에 대규모 시장을 개설하는 등 상업을 적극 장려하였습니다. 개성의 시장은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규모였으며, 금속화폐들은 상업이 크게 번창한 개성 지방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유통되었습니다. 특히 개성 상인들은 멀리 중국에까지 진출하여 중국 상인은 물론 서역 상인들과도 교역을 펼침으로써 오늘날 코리아라는 이름이 서방에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개성 상인들의 주요 수출품은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고려 인삼이었습니다. 또한 일본과의 무역에서 인삼을 은과 교환하고, 이것을 다시 중국과 교역함으로써 막대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보았을 때는 아직도 쌀과 포가 지배적인 화폐로 통용되어, 금속화폐의 유통은 제한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철전과 동전의 두 종류가 있으며, 외형은 둥글고 가운데에는 네모의 구멍이 있습니다. 건원중보라는 이름의 화폐는 이미 중국 당나라 숙종의 건원 연간(756~762)에 발행되었으며, 고려는 이를 모방하여 앞면에는 ‘건원중보’라는 화폐이름을 새기고, 뒷면에는 위아래로 ‘동국’이라 표기하여 996년(성종 15) 철전을 처음으로 주조하였다가 이듬해 유통시켰다. 액면가 표시가 없는 이 화폐는 종전까지 화폐대용으로 사용되어온 포(布) ·토산물과 함께 사용되었으나, 다주점·식미점 등에서만 사용되는 등 유통의 제한을 받았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주화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성종 15년(996년)에 철전을 주조해 꾸러미로 묶은 뒤 창고에 가득 쌓아두었다가 다음해 길일(吉日)을 택해 발행하였다고 한다. 1910년대 초 개성 부근의 고려 고분에서 무늬 없는 철전과 함께 출토된 건원중보(建元重寶)가 바로 기록에 나타난 고려 성종 때의 철전일 것으로 추정된다. 건원중보는 중국 당나라의 건원중보를 모방한 것으로, 앞면은 같으나 뒷면에 고려의 화폐임을 뜻하는 ‘동국(東國)’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놓았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활발한 대외무역을 바탕으로 건원중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금속화폐가 등장하여 화폐사에 커다란 발전을 이룩하였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도읍지인 개성에 대규모 시장을 개설하는 등 상업을 적극 장려하였다. 개성의 시장은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규모였으며, 금속화폐들은 상업이 크게 번창한 개성 지방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유통되었다. 특히 개성 상인들은 멀리 중국에까지 진출하여 중국 상인은 물론 서역 상인들과도 교역을 펼침으로써 오늘날 코리아라는 이름이 서방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개성 상인들의 주요 수출품은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고려 인삼이었다. 또한 일본과의 무역에서 인삼을 은과 교환하고, 이것을 다시 중국과 교역함으로써 막대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보았을 때는 아직도 쌀과 포가 지배적인 화폐로 통용되어, 금속화폐의 유통은 제한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출처 : 한국의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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