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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좀합시다
그만좀합시다23.07.23

조선시대에 호패는 누구에게 지급 되었나요?

오늘날의 신분증과 같은 호패는 조선시대에 누구에게 발급되었나요? 천민에게도 발급이 되었나요? 호패를 발급받는 사람은 누구나 발급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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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2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호패법 시행 이후로 지금의 신분증처럼 차고 다녀야 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호패법에 따라 16세 이상의 남성들은 누구나 호패를 차고 다녀야 했습니다.

    조선후기 성인 남성들에게 친숙한 물건 가운데 하나가 호패였습니다.

    또 호패에는 착용자의 신분이나 지위를 비롯하여 거주지 등 기본적인 인적 사항을 담고 있어 오늘날의 주민등록증과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원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호패와 호패를 장식하던 호패 술을 통하여 조선시대 남성의 장신구에 대한 취향을 살펴볼 수 있다. 호패는 조선시대의 신분증으로, 오늘날 만 17세 성인 남녀가 모두 발급받는 주민 등록증과는 달리 남자들만 지급받았다.

    호패는 1354년(공민왕 3)에 원나라 제도를 모방하여 시행하였으나, 잘 시행되지 않았고 조선시대 들어와서 확대되었다. 호패법을 제정한 목적은 호적을 파악하여 요역과 군역 자원을 확보하고 세금을 걷어 들이는 데 있다. 호패는 품계와 신분에 따라 기재하는 내용과 만드는 재료가 달랐다. 『속대전』에 보면 2품 이상은 상아, 3품 이하 잡과 합격자는 각(쇠뼈), 생원이나 진사는 황양목, 잡직·서인·서리는 소목방패, 공·사천(公私賤)은 대목방패로 만들었다고 한다.

    호패는 신분에 따라 재료가 달랐지만 호패를 장식하는 술은 개인적 취향이나 경제력에 따라 달라졌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호패를 보면, 신분이 높아도 호패 술은 별반 장식이 없는 것도 있지만, 벼슬하지 않은 사람의 것일지라도 상아로 깎은 주판알 같은 구슬 장식을 이중으로 하여 멋을 내고, 호패 술도 매우 풍성하고 긴 것들이 더러 있다.

    자료출처 : 우리역사넷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호패는 조선 시대의 주민등록증이라고 할 수 있다. 주민등록증 제도는 정부에서 조세와 국방 같은 국민의 의무를 다하게 함은 물론 여러 가지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 실시한다. 조선 시대에도 이와 같은 목적으로 호패를 만들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오늘날에 만 18세 이상의 남녀에게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는 것과 달리, 조선 시대의 호패는 16세 이상의 양인 남자들만 지니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16세 이상의 양인 남자에게 군역의 의무가 있었던 것과 관계가 있다.


    군역을 담당하는 관청에서는 호패법에 따라 백성들의 인적 사항을 기록한 단자를 만든 다음, 그에 따라 군사를 징발하거나 군포를 거두었다.


    또한 백성들의 인구를 파악하고 세금을 거두기도 했다. 조선 초기에는 이민족이 불법적으로 들어와 사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도 쓰였다.


    호패법이 처음 실시된 것은 제3대 임금인 태종(이방원) 때였으나, 농민의 반발과 별다른 효과가 없어 중단되었다가 다시 실시하는 일이 되풀이 되었다. 그러다 제19대 임금인 숙종 때에는 어느 정도 정착되어 고종 때까지 유지되었다.


    호패법에 따라 16세 이상의 남자들은 모두 평소에도 호패를 차고 다녀야 했다. 호패를 지니지 않으면 처벌을 받았다.

    출처 : 한국사 사전1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호패는 16세 이상의 남성은 의무적으로 호패를 지녀야 했습니다.

    호패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양반과 노비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