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특별한 목적 없이 외출하여 걷고 다방에 들어가고 벗을 만나고 하는 구보(仇甫)의 행동이 아니라, 일상성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주인공 구보의 의식의 추이와 그것을 서술하고 있는 서술 양식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는 전통적인 소설 장르에서 중시하는 사건이나 행위, 갈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것은 구보의 지각과 의식의 유동뿐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공간은 스물여섯 살 구보의 서울에서의 하루이지만, 의식의 공간은 첫사랑을 시작한 어린 소년기에서 동경 유학 시절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어 있다. 따라서, 플롯을 중심으로 하는 서사 구조가 약화되어 있는 반면,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의식의 추이에 대한 서술이 강화되어 있다. 이 소설은 1930년대 문학인의 일상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당시 문학인의 의식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지표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탄제”, “비량” 등의 단편 소설들에서 인물의 심리를 면밀하게 탐구하던 것과 장편 소설 “천변 풍경(川邊風景)”에 나타나는 철저한 관찰적 방법과의 혼재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중편 소설이란 점에서, 박태원의 작품 변모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