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충렬왕이 살았던 시기는 몽골이 원(元)이라는 대제국을 건설한 시기였다. 중국을 평정하고 원을 세운 세조 쿠빌라이는 몽골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의 손자이며, 고려 충렬왕의 장인이었다. 정복하는 것보다 정복한 지역들을 잘 다스리기 더 어렵다고 하는데, 쿠빌라이는 칭기즈칸이 물려준 대제국을 잘 다스리고 넓힌 인물이다.
그러나 쿠빌라이의 능력과 야심은 당시 고려로서는 불행한 일이었다. 원나라에 굴복한 고려는 그들의 명령을 따르는 일개 제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고려가 원의 공공연한 지배권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원황실과 고려왕실간의 통혼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일찍이 고려왕들은 후비들을 왕실이나 귀족가문에서 맞아들였으나, 몽골과의 오랜 항쟁이 끝나고 나서고려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을 해야 했다.
원이 고려왕을 부마로 삼고자 한 이유는 고려를 감시하기 위한 정략적 이유가 컸다. 이후 고려왕은 원나라 공주와의 결혼은 물론이고 원황실에 충성을 한다는 의미로 충(忠)자를 사용했다.
고려 왕실에서 원 황실과의 처음으로 통혼한 이는 고려 25대 왕 충렬왕이었다. 충렬왕은 원종의 맏아들이자 정순왕후 김씨 소생으로 1236년에 태어났다. 1267년 태자로 책봉된 이후 원나라에 입조하여 연경(지금의 북경)에 머무르다가 원 세조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하였다.
충렬왕과 원공주와의 혼인은 1271년(원종 12) 원종이 원나라에 정식으로 청혼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원종은 추밀원사 김연을 원 세조에게 보내서 정식으로 청혼하였고 그 해 6월 충렬왕은 세조를 알현하고 혼인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6개월 후 충렬왕은 천여 근의 금을 마련하여 원나라로 가서 1년 반쯤 지난 뒤인 1274년(원종 15) 5월에 원 세조의 딸 홀도로게리미실 공주(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하였다.
마흔이 다 된 나이로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한 충렬왕은 이미 태자로 책봉된 직후 왕녀인 정화궁주와 혼인하여 장성한 자녀까지 둔 유부남이었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세조 쿠빌라이의 딸인 제국대장공주는 충렬왕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 주어 원의 누구도 충렬왕을 가볍게 볼 수 없었다.
혼례를 치르고 두 달 뒤 부친인 원종이 승하하자, 충렬왕은 왕위 승계를 위해 고려로 돌아왔다. 어린 나이에 충렬왕에게 시집 온 제국대장공주는 남편과의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는 않았다. 충렬왕에게는 이미 부인이 있었고 그 부인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비록 금실이 좋지는 않았지만, 공주는 이듬해에 아들을 낳았고, 그가 충렬왕을 이은 충선왕이다. 고려 왕실 최초의 혼혈 왕이기도 한 충선왕 이후로 고려의 왕들은 원나라에서 일명 뚤루게(禿魯花)인 질자(質子)로 성장하게 되었다.
출처 : 인물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