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소설에 나오는 삼고초려는 어떤 일화인가요?
흔히 귀한 사람을 초빙하거나 포섭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가르켜 삼고초려라고 표현을 하는데요
이 사자성어가 유비와 제갈량의 일화에서부터 시작이되었다들었는데요
이 삼고초려와 관련된 일화의 내용이 정확히 어떤것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 시대에 촉한의 유비가 융중에
기거하던 제갈량을 얻기 위해 몸소
제갈량의 초가집으로 세 번이나
찾아갔던 일화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비와 제갈량과 관련된 일화입니다.
유비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 제갈량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눈보라와 두 아우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 번째 찾아갔을 때는 제갈량이 집에 있기는 하였지만 마침 낮잠을 자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유비는 제갈량이 깨어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제갈량을 모시기 위해 초가집을 세 번이나 방문한 이 일을 두고 '삼고초려(三顧草廬)'라고 합니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지연의〉1)에서 유비·관우·장비·조조 등과 함께 또 한 명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제갈량은 뛰어난 지략과 신출귀몰한 병법으로 후대 사람들에게 난세를 헤쳐 나갈 지도자의 모범으로 거듭 입에 오르내리곤 하였다. 제갈량은 원래 중국 낭야군 양도현 사람으로 후한 말 호족 출신이었으나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고 형주 근방에서 학문을 닦으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에게 늘 따라 붙는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는 별명은 형주에서 은거하며 지내는 동안 생긴 것으로 이후에도 제갈량을 부르는 다른 이름으로 널리 사랑을 받았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그의 능력이 비바람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신출귀몰하다고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으나 이는 실제 형주 지역의 기후와 지리적 여건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그의 해박한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유비를 만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내어놓는데 이는 당시까지 변변한 정치적·군사적 기반이 없던 유비에게는 천금과도 같은 비전으로 다가왔다. 이후로 유비의 군사로 임명되어 오의 손권과 연합하는 데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고 유비-손권 연합군을 지휘하여 조조의 수십만 대군을 적벽에서 격파하는 큰 전과를 올린다. 이를 계기로 유비의 세력은 크게 확장하여 형주 일대를 장악하고 익주(지금의 쓰촨성) 지역까지 손에 넣어 천하삼분지계를 실현하였다.
한때 오와의 동맹 관계가 깨져 형주를 빼앗기고 유비와 관우, 장비 등이 모두 죽은 뒤에도 유비의 아들인 유선을 보필하며 촉의 재상으로서 국력을 기르고 멸망한 한의 위업을 다시 잇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위에 대한 전쟁을 벌이기 전, 지금의 베트남 지역인 운남 지역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운남 지역의 지도자였던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았다가 일곱 번 모두 놓아 준 일은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운남 정벌이 끝난 뒤 본격적인 북벌을 단행하기에 앞서 군주인 유선에게 써서 올린 〈출사표〉는 시대의 명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후로도 ‘출사표’라는 말이 일반명사처럼 사용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위와의 국력차이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훗날 위를 무너뜨리고 진을 세운 사마염의 조부인 사마의에 의해 번번이 퇴각을 거듭하다 다섯 번째 북벌에서 병세가 깊어져 오장원에서 병사하고 만다. 그러나 죽는 순간에도 특유의 기지를 발휘하여 촉의 병사들이 무사히 퇴군할 수 있도록 하여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내쫓다’라는 속담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는 제갈량의 지략과 정치적·외교적 수완이 삼국지연의에서 과장되게 부풀려진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제갈량은 실제로 병법과 국가 운영에 관한 수십 권의 저서를 집필하였고 정사(正史)의 기록에서도 그가 뛰어난 정치가, 군사 전문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갈량이 특히 많은 후대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은 것은 그가 소규모 군사 집단에 불과했던 유비의 세력을 중국 대륙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는 국가의 주인으로 만든 전무후무한 능력에 있었다. 미약한 세력으로 한 나라를 일군 그의 능력을 높이 산 후대인들은 국력이 약해지고 외세의 침입이 잦은 시절에 이르러 국가적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지도자의 모범으로 제갈량을 꼽곤 하였다.
이는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허생이 이완 대장에게 추천한 인물들이 제갈량에 비견되는 것이나, 개화기에 외세의 조선 침략이 본격화되던 상황 속에서 국가의 힘을 기르고 외세를 물리칠 방법을 꿈에 제갈량을 만나 전해 듣는다는 형식의 소설들이 창작되었던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출처 :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태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고초려는 三顧草廬라고 한자로 쓰며, 초가집을 세번 방문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기위해서 세번씩이나 찾아가서 읍소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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