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한강에 밤섬이라는 섬이 있고 예전에 그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는데 언제 무슨 사유로 사람이 없는 섬이 되었나요?
여의도 한강에 밤섬이라는 섬이 있고 예전에 그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는데 언제 무슨 사유로 사람이 없는 섬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황령산이여입니다.
밤섬은 500년 전 조선의 서울 천도와 함께 배 만드는 기술자들이 처음 정착했다고 한다. 이 섬에는 마씨(氏), 인씨, 석씨, 선씨 등 희성(希性)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폭파 당시 밤섬에는 부군신, 삼불제석님, 군웅님의 3신을 모시는 사당을 만들어 17대를 살아온 62가구 443명이 살고 있었는데 대부분 어업과 도선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밤섬은 서강(西江)에 가까웠던 탓으로 정조 13년(1789년)에 발간된『호구총수』에 한성부 서강방 율도계라는 이름으로 나와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밤섬은 여의도와 함께 고양군 용강면 여율리가 되었다.
『대동지지』에 의하면 서강 남쪽에 있는 한 섬으로 섬 전체가 수십리의 모래로 되어 있으며 거민들은 부유하고 매우 번창한 편이었다. 특히 경치가 아름다워『서울명소고적』에서는 “율도는 일찍이 마포팔경을 읊은 글 가운데에서도‘율도명사(栗島明沙)’라 하였듯이 맑은 모래가 연달아 있어서 그야말로 한강 강색과 섬의 풍치는 묘하게 어울린다”라고 하였다. 밤섬(栗島)에 관한 조선시대 기록으로, 성현(成俔)의『용재총화』에 의하면 율도(栗島)는 조선초기부터 뽕나무를 심어 잠업이 성행한 지역이었고, 서울장안에 뽕잎 값이 비쌌을 때 밤섬에서 뽕을 대기도 하였다.
밤섬에 관한 풍습은『명종실록』 명종 11년(1556) 4월 조(條)에 섬 주민의 생활방식이 문란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밤섬이 외부와 교통이 제한되어 남의 이목을 덜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동국여지비고』에서도 고려 때는 귀양 보내던 섬이었으며 도선(渡船)장으로 백사장을 건너 인천으로 가는 간로(間路)가 된다고 하였다. 밤섬은 여의도가 개발되면서 한강하구의 확장으로 유수를 좋게 하고, 여의도 제방의 축석에 필요한 잡석채취를 위해 1968년 2월 폭파 해체된다. 현재는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온갖 철새가 모여 들고 있으며, 퇴적물이 쌓여 그 면적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출처 : 한강 생활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