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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7.14

조선시대 동성동본은 결혼을 할 수 없었나요

현재 대한민국은 동선동본이면 촌수가 멀면 결혼은 법률적으로 가능한데요 조선시대는 동성동본이면 유교적 가치가 강하게 지배하는 시절이라 결혼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땠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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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1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성동본불혼의 원칙은 한국에는 조선시대에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이 원칙은 근친혼, 특히 혈족 근친과의 혼인을 금지하려고 하는데 그 취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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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이 건국 된 후 조선은 동성혼을 엄금한 대명률을 준용하여 같은 성씨간의 혼인을 법으로 금했습니다. 그러나 성씨의 종류가 많지 않은 대신 본관이 세분화된 조선의 현실에서 중국과는 다르게 동성금혼이 아닌 동성동본금혼이 관행으로 자리잡았습니다.

    17세기 이후 이 같은 동성이본혼까지 규제하려는 시도가 나타나 속대전, 대전회통 등의 법전에서 본관이 다르더라도 성씨가 같으면 혼인할수 없다고 규정하게 되나 당시 호적대장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동성이본 간에는 혼인이 빈번하게 나타나 규범과 관행에 차이가 있었으며 동성금혼이 아닌 동성동본금혼 관념이 정착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 1912년 제정된 조선민사령에서는 친족상속에 관한 사항은 관습에 의거한다고 하여 관습주의를 표방했는데 조선 관습에 대해 대대적으로 조사해 간행한 관습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동성동본금혼을 관습으로 규정, 1923년 개정 민사령에는 혼인신고를 해야 효력이 발생하는 법률혼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때 혈족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가 요구되어 동성동본금혼의 관습은 더 강화되었습니다.

    성씨에 따라서는 동성동본이라 하더라도 시조가 다른 경우 통혼하는 관행도 많았는데 혈족이 다르다는 것을 재판소에 신청해 입증해야 했으므로 어려운일이 되었고 반대로 동성동본이 아님에도 혼인하지 않던 관습은 인정되지 않아 결혼에 문제가 되지 않는 한 금혼과 허혼의 범위가 동성동본이라는 하나의 원칙으로 통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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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불취동성제(不娶同姓制)를 언급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인데, 그 ‘예조(濊條)’에서 ‘동성불혼(同姓不婚)’이라고 한 구절을 찾을 수 있다. 동성불혼은 족외혼의 단위가 되는 씨족집단이 존재하였음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지금의 동성동본불혼과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경우 동성혼의 기록이 없지만, 신라는 전시기를 통하여 동성근친혼, 이계동성혼(異系同姓婚) 등이 계속 행해지면서 동성혼에 관한 시비가 없었던 것으로 전한다. 고려시대에도 신라의 동성근친혼의 전통이 계속 되어서 적어도 왕실에서는 동성혼, 근친혼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시대 근친혼에서 하나의 전례를 찾는다면 이복남매혼(異腹男妹婚)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모(母)가 혼인을 행할 수 있는 하나의 단위가 되었다.

    고려 초기부터 근친혼을 금지하여 1058년(문종 12), 1085년(선종 2), 1096년(숙종 1) 1134년(인종 16) 등 여러 차례 4촌 이내의 혼인을 금지하기도 하고 또 해제하기도 하였다. 이는 혼인을 직접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후손의 출사를 막는 등 간접적인 방법이었다. 1309년(충선왕 즉위년)에 원(元)나라의 영향으로 문·무 양반의 동성동본금혼령이 내려졌다. 동성불혼이 확립된 때는 유학을 국시로 하는 조선시대이다. 조선시대 일반형사법으로 적용되었던『대명률(大明律)』에서 동성혼과 근친혼을 금하였고, 이에 따라 조선 전기부터 동성혼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성불혼은 우리나라의 경우 동성동본불혼이 되어 동종불혼(同宗不婚)이 된 것이지, 성만 같으면 혼인을 금하는 동성불혼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속대전(續大典)』에서 동성불혼을 규정하였으나 끝내 이는 준수되지 않았다. 이것은 한국적 특색으로 성뿐만 아니라 본관이 같아야 동종(同宗)인 한국에 있어서 동성(同姓)이면 동종인 중국식의 동성불혼은 성립되지 않은 것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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