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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오색조199
깨끗한오색조19923.02.17

독서를 좋아하던 조선시대에도 책방이 있었나요??

조선시대에도 책방이 있었나요??

그 옛날엔 독서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요...집에서만 볼 수 있었나요??

또한 그책은 꼭 사서 봐야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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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서점은 없었고 집에서 책을 찍어 팔거나 직접 돌아다니며 파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글로 된 책을 손수 찍어 팔았는데 이를 방각본 이라 합니다.

    방각본은 돈을 적게 들여 만들어 인쇄상태, 종이의 질이 좋지 않아 싼 값게 팔았다고 하며

    조정에서도 관영 서점인 교서관을 운영했습니다.

    이는 돈을 받고 책을 팔지 않았고 좋은 책을 많이 보급하기 위해 운영했으므로 한문책을 한글로 번역하여 여러 권 찍어냈습니다.

    또, 조선시대 책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책 대여점인 세책점이 생겼습니다.

    이는 전문 필사자가 필사한 책을 돈을 받고 빌려주는 상업적인 도서 유통방식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상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말기 이전까지는 한반도에 서점이나 도서관 혹은 그와 비슷한 시설은 존재하지 않았다. 보통 서적은 국가 주도 하에 인쇄가 필요한 서적은 관청이나 교육기관에서 배포하였다. 또한 '책쾌'라고 불리던 책장수(서적 도매상)가 그때 그때 필요한 서적들을 수급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유통되었다.

    중앙 정부에서 배포한 서적의 경우 무료인 경우가 많았으나 발행량이 아주 적어 이름난 가문이나 지방 관청 선까지만 배포되어 한없이 부족하였다. 그리하여 '책쾌'를 통해 서적을 구매하려 하였으나,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책쾌라 불리던 서적중개상은 오늘날로 말하면 서적 외판원에 해당한다. 전문 서적상으로 개인적으로 책을 팔러 돌아다니던 일종의 책 거간꾼이었다. 책쾌의 집에서 수천 종의 책을 깨끗이 베껴 쓰고 빌려주는 일을 했다고 기록한 채제공의 글을 참고한다면... 책쾌는 단순한 서적 거간꾼은 아닌 듯 하다. 따라서 18세기 중반에 전문적으로 필사한 책을 돈을 받고 대여해 주는 세책업이 성행하게 된다.

    세책점은 조선 후기에 생겨난 서점인 셈이다.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곳이 생긴 것이다. 춘향전, 홍길동전 같은 한글 소설과 번역한 중국 소설 등을 그대로 베껴서 만든 책을 빌려주는 곳이었다. 인기가 많았다. 특히 여성들이 좋아해서 책을 사보기 위해서 집 안에 있는 그릇이나 가구를 팔아 책을 빌려 보았다고 한다. 그로 인해 빚을 지기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이 돌려봐야 했기에 책을 만들 때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책장을 빳빳하게 만들기 위해 들기름을 바르고 책 표지가 닳지 않도록 두꺼운 삼베로 덮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 책의 마지막 장에는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는 말을 꼭 써 넣아다고 한다. 글씨 못 썼다고 흉보지 마세요. 책을 찢지 말아요 등등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 말기 이전까지 한반도에

    서점이나 도서관과 비슷한 시설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교라는 학문을

    국시(國是)로 삼아 신진사대부 계층이 상당한 수준의 교양을 갖춘 일반

    백성들을 통치하던 조선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는 참으로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서적은

    국가 주도 하에 인쇄한 것을 관청 및

    교육기관 등을 통해서 베포되었거나,

    "책쾌"라고 불리던 책장수(서적 도매상)가 그때그때 필요한 서적들을 수급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유통되었다.


    -출처: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