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혁명 이후, 니콜라이와 그의 가족들은 (황제의 명령이 아닌 케렌스키의 명령을 따르게 된) 군인(러시아가 아닌 케렌스키 개인 소유의 군인)들의 감시를 받아 가면서 우랄 지방에 거처하게 되었다.
약 8개월 동안 단란한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예전에 깨끗했던 궁전이 아닌, 평범한 민가(民家)에 살아야 했다. 군인들은 그들의 대화까지도 엄격히 검열했다. 이때 황후 알렉산드라만은 아주 지독한 신경쇠약에 시달리게 된다.
니콜라이와 그의 가족들은 1918년 7월 어느 날, 유대인 출신의 야코프 스베르들로프의 적군(赤軍)에 의해 예카테린부르크의 이파티에프 하우스에 감금되었고 바로 그날 총살형을 당하였다.
이들의 시신은 전원 불태워져 소각되었고, 소각된 시신들은 1991년에 들어서야 발굴되었다. 이때 적군은 니콜라이 일가족들을 서둘러 처형했는데 니콜라이 황제의 지지세력인 백군(白軍)이 그들을 구출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