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라는 직위가 조선과 고려시대에 어떻게달랐을까요?
우리가 보통 아는 내시는 조선시대의 내시라고 하는데요.
보통 시중을 드는 직위인데요. 근데 고려시대에는 달랐다고 하던데 어떻게 다른건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내시는 맡은 업무의 성격상 궁중에 상주하면서 왕비, 후궁 , 궁녀들과 가까이 있어야 했는데 궁중의 여인들은 왕비부터 최하층 궁녀인 무수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왕의 여인, 즉 왕의 예비 신부들이기 때문에 왕 아닌 다른 남자를 가까이 하는 것이 일절 금지되었으므로 거세한 성 불구자를 내시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고려시대 내시는 과거 급제나 음서로 벼슬에 오른 문벌 집안의 아들, 전쟁에 나가 군공을 세웠거나 학식이 뛰어난 젊은이들 가운데 장래가 촉망되는 자를 선발하여 왕의 측근에 둔 최고 엘리트 집단으로 내시로 뽑히는 것은 탄탄한 미래와 부귀영화를 보장받는 것이었고 거세한 성 불구자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내시와 조선시대 내시는
전혀 달랐는데, 고려시대의 내시는
과거 급제나 음서로 벼슬에 오른
문벌집안의 아들, 또는 전쟁에 나가
군공을 세웠거나 학식이 뛰어난 젊은이 가운데 장래가 촉망되는 자를 선발하여 왕의 측근에 둔 최고 집단이었으며,
고려시대 내시를 보면 고려에 성리학을 들여온 유학자 안향, 《삼국사기》
편찬자인 경주 김 씨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 구재학당이라는 사학을 열어 문헌공도를 배출한 해주, 최영 장군의 5대조 평장사 최유청, 의종의 태자시절 스승인 문화시중 윤관의 아들 윤언민, 이들이 모두 내시였다. 내시 출신으로 재상에
오른 자만 수십명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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