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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말똥구리64
완벽한말똥구리6423.06.07

서동요의 실재했던 주인공은 선화공가 맞나요?

우리가 드라마로도 봐서 익히 알고있는 서동요의 주인공인 선화공주는 사실이 아니며 무왕의 진짜 부인은 사택황후라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는데 맞는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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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009년 1월 미륵사지 서탑의 복원 공사때 서탑의 심주석 사리공 안에서 금으로 된 찬에 적힌 사리봉안기가 나왔는데 거기에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으로...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 정원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봉안하였습니다.

    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무왕의 왕비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사택 가문의 딸이라는 기록으로 기해년은 639년으로 백제 무왕 40년이며 무왕이 죽기 2년 전입니다.

    기록이 나오자 선화 공주는 단지 설화의 주인공일 뿐 무왕의 왕비가 아니라는 주장이 큰 힘을 얻었는데 특히 무왕의 아들인 의자왕의 출생연대가 알려지면서 그 무렵 선화공주는 나이가 너무 어려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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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07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4구체. 향찰(鄕札)로 표기된 민요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노래는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2 무왕(武王)조에 수록되어 있는 서동설화(薯童說話)에 끼어 전합니다. 이 설화에 의하면, 이 노래는 백제 무왕이 소년시절에 서동으로서 신라 서울에 들어가 선화공주를 얻으려고 지어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서동설화를 여러모로 분석·검토한 결과 그 설화의 역사적 주인공은 무왕이 아니라 백제 동성왕이라는 주장이 나왔는가 하면, 또한 동성왕도 아니고 신라의 원효(元曉)라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최근에는 이 서동설화를 익산미륵사연기전설(益山彌勒寺緣起傳說)로 취급하면서 그 역사적 주인공은 백제의 무령왕이지만, 그 설화상의 민담적 주인공은 서동(薯童)이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사실 이 설화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애정담을 핵심으로 하는 민담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므로, 그 허구적 주인공 서동이 백제 동성왕이나 무령왕, 혹은 신라 원효 등이 지닌 소년시절의 모습이나 이름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 역사적 인물 중 어느 누구도 이 노래의 작자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서동’은 서여(薯蕷, 마)를 비롯한 산약과 산나물을 캐어 생활을 이어가던 소년의 무리를 지칭하던 보통명사로서 초동(樵童)·목동(牧童) 등과 같은 종류의 집합명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서동요」는 서동들에 얽힌 이야기, 그 속에 들어 있는 하나의 노래로 전승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즉, 「서동요」는 서동들의 노래로서 구체적인 작자를 찾을 수 없는 공동으로 제작되어 전승된 민요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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