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호족은 고려 건국 이후에는 918년부터 977년까지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태조의 정비(正妃) 6명과 기타 부인 23명 등 29명은 모두 태조가 지방의 호족, 공신·귀화 귀족 등과 유대를 맺기 위한 혼인 정책에 따라 취한 그들의 딸들로 이 가운데 경주의 평준, 합주의 이원, 춘주의 왕유, 서경의 김행파, 신주의 강기주 등 유력한 호족들이 그들의 딸을 태조에게 바쳐 세력보전을 꾀하였는데, 특히 서경의 김행파는 두 딸을 혜종과 정종에게 바쳐 중복된 외척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태조는 또한 지방 호족을 회유하여 그들에게 중앙관직의 위계(位階)와 똑같은 명칭의 향직위를 주고, 중앙 정부를 축소한 듯한 조직을 갖게 하여 지방 자치를 맡게 하는 한편, ‘기인’이라 하여 호족의 자제를 인질로 선상케 하여 그 세력을 견제하였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의 호족 세력은 왕권 강화 정책을 편 고려 광종 때부터 약화되어 갔으며 고려 경종 친정 후에는 문벌귀족에 흡수되거나 일부는 주도권을 빼앗기고 몰락하여 향리 계층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