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Jy천사1004
Jy천사100423.04.28

묘청의 난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고려시대 승려 묘청이 있었는데 어떤 이유로 정부에 반기를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승려가 군사를 어떻게 모았을까요? 궁금하네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28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135년 고려의 승려 묘청이 개경에서 서경으로 천도를 추진하며 대위국을 선포하며 일으킨 난. 재밌는 사실은 묘청이 난을 일으킨 지 고작 17일 만에 조광에게 암살당했고 이후 1년 넘게 조광이 항전하면서 버텼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조광이 주도한 기간이 더 길다는 점이다.

    묘청은 서경 출신으로 인종 때 왕실 고문 자리까지 올랐다. 이 시기에는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기세를 이어 송나라까지 강남으로 쫓아버리면서 새로이 중원의 패권을 잠식함에 따라 동북아시아가 요동치는 격동의 시기였는데 묘청은 금나라에 맞서 대항하자는 명분과 함께 개경은 지덕이 쇠하였으므로 수도를 서경으로 옮기자고 주장했다. 이른바 서경 천도 운동이다. 아마도 묘청은 대외적인 명분 이외에도 개경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김부식 일파를 몰아내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묘청이 살아있는 동안 개경 세력과 서경 세력은 매번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출처: 나무위키 묘청의 난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묘청의 난은 고려 인종 때 승려 묘청 등의 금국정벌론과 서경 천도론이 개경 귀족들의 방해로 무산되자 서경에서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 군호를 천견충의군이라 하여 대위국을 선언하고 일으킨 반란이다.

    -출처: 위키백과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묘청은 서경 출신으로 인종 때 왕실 고문까지 올랐는데 이 시기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기세를 이어 송나라 까지 강남으로 쫓아가버리면서 새로이 중원의 패권을 잠식함에 따라 동북아시아가 요동치는 격동의 시기였는데 묘청은 금나라에 맞서 대항하자는 명분과 함께 개경은 지덕이 쇠하몄으므로 수도를 서경으로 옮기자 주장합니다.

    서경천도 운동이 실패하자 묘청 일파는 서경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키는데 1135년 정월 서경의 분사시랑, 동 병부상서 유참 등과 함께 반기를 들고 부유수 이하 중앙에서 파견된 관원들과 서경에 와 있던 상경인들을 잡아 가두고 자비령 이북을 차단, 서북면 내의 모든 군대를 서경에 집결하게 하고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 군대의 호칭을 천견충의라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묘청은 서경(지금의 평양) 출신 승려입니다.



    묘청은 서경 출신 관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자신들을 위해 수도를 서경으로 옮기려 했습니다.



    묘청은 풍수지리설을 이용해


    개경은 힘이 다했으니 서경으로 수도를 옮기고,


    황제의 칭호와 연호를 사용하고,


    금나라를 정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개경에서는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


    궁궐이 불타고 왕의 권위가 떨어졌습니다.


    인종은 이런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했고,


    마침 서경 출신 세력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인종은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어


    정치를 새롭게 하고 왕권을 드높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서경 세력들의 진심이


    자신들의 이익 때문이란 걸 알고난 뒤로


    그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묘청은 인종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으나 실패했고,


    결국 서경에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인종은 김부식을 앞세워 반란세력을 제압하고


    서경의 위상을 깎아버렸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묘청은 서경(지금의 평양) 출신 승려입니다.

    묘청은 서경 출신 관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자신들을 위해 수도를 서경으로 옮기려 했습니다.

    묘청은 풍수지리설을 이용해

    개경은 힘이 다했으니 서경으로 수도를 옮기고,

    황제의 칭호와 연호를 사용하고,

    금나라를 정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서경 세력들의 진심이

    자신들의 이익 때문이란 걸 알고난 뒤로

    그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묘청은 인종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으나 실패했고,

    결국 서경에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인종은 김부식을 앞세워 반란세력을 제압하고

    서경의 위상을 깎아버렸습니다.

    라는 답변을 구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인종 때 승려 묘청 등의 금국정벌론과 서경 천도론이 개경 귀족들의 방해로 무산되자 서경(西京) 에서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 군호(軍號)를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이라 하여 대위국(大爲國)을 선언하고 일으킨 반란입니다. 묘청은 음양비술이라고 일컫는 풍수설을 바탕으로 서경세력들을 규합하고 그 결과 정지상을 비롯하여 내시낭중 김안, 홍이서, 이중부, 문공인, 임경청 등이 묘청의 풍수설에 매혹되었다고 합니다. 묘청이 군대를 일으킬수 있었던 것은 문무 관리들을 설득 하여 따르게 한 것이지 승려들을 규합 한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