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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몽골과 강화를 맺어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고려는 원의 부마국으로 왕실 및 관제가 격하되었으며, 영토 할양(동년부, 탐라총관부, 쌍성총관부)과 공물의 요구와 간섭에 응해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공녀까지 요구하여 고려는 조혼제도가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원은 다루가치와 정동행성을 두어 내정 간섭을 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은 경제적으로 지배층의 수탈과 원의 수탈과 일본 원정 동원으로 어려움이 심화되었습니다.
문화적으로 원의 경제, 문화적 교류로 몽골 풍속(몽골풍)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원의 내정 간섭으로 통역관, 환관 등 원과 관계를 맺은 세력이 성장하여 권문세족이 새로운 지배층을으로 대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