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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빙
비비빙23.03.04

귀주대첩은 어떤전쟁이 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귀주대첩 이라고 하면 무슨역사였고 어떤전쟁이었는데 언제 일어나고 누가 이끌어서 승리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자세히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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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0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귀주대첩은 1019년 2월 1일, 강감찬이 이끄는 약 21만 명의 고려군이 귀주에서 10만 명의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전투로 초기의 기선 제압, 유격전, 청야전술, 포위 섬멸전을 완벽하게 구사하며 승리한 전투입니다.

    또한 귀주대첩은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과 함께 한국사 3대 대첩이라 불린답니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부터 거란과는 거리를 두었고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거란이 멸망시켰으며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고려는 북진 정책을 국시로 내걸었기 때문에 국경을 마주한 거란과는 대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란 입장에서는 이러한 고려의 정책과 더불어 송나라와 고려가 연합할 경우, 고려가 자신들의 뒤를 칠 것을 우려하여 사전에 고려를 완전히 자신들의 속국 정도로 제압하든지 최소한 송나라와 거리를 두게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거란은 고려를 3차례 침공하였죠.

    993년(성종 12) 1차 침입에서는 소손녕이 이끈 거란군에게 승리한 뒤 서희가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획득하였고, 1010년(현종 1) 2차 침입에서는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침공해 왔으나 별 소득없이 돌아갔고, 1018년(현종 9년) 3차 침입에서 강감찬이 귀주대첩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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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현종 때 거란 침략군을 귀주에서 물리쳐 승리한 싸움입니다.

    고려는 태조 때부터 발해를 멸망시키고 압력을 가해오는 거란에 대해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진정책을 계속 시행하였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993년(성종 12) 소손녕(蕭遜寧)이 이끄는 제1차 침입이 있었으나 서희(徐熙)의 담판으로 압록강 동쪽의 땅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강동6주(州)가 군사적 거점이 되자 이를 차지할 목적으로 거란은 강조(康兆)의 정변을 구실로 1010년(현종 1) 성종(聖宗)이 제2차 침략을 시도하여 개경까지 함락했으나 별다른 소득 없이 다시 철수하였고, 이에 국왕의 친조와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1018년 소배압(蕭排押)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제3차 침략을 감행해왔다.
    이때 고려는 강감찬(姜邯贊)을 상원수, 강민첨(姜民瞻)을 부원수로 삼아 20만 8천의 대군으로 맞서 싸우게 하였다. 거란군은 흥화진(興化鎭)을 통하여 내려오다가 그곳에서 패배했지만, 자주(慈州)에서 강민첨의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서경(西京)을 거쳐 개경 부근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병력의 손실이 크자 소배압은 정벌을 포기하고 황해 신은(新恩)에서 회군하여 가다가 청천강 유역의 연주(漣州)·위주(渭州)에서 강감찬의 공격을 받아 대패했으며, 특히 귀주에서 기다리고 있던 병마판관 김종현(金宗鉉)의 공격을 받아 크게 패배하였다. 이때 살아남은 병력이 수천 명에 불과하였을 정도로 거란의 패배는 심각하였고, 그 결과 거란은 국왕의 친조와 강동6주의 반환을 다시는 요구할 수 없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귀주대첩 [龜州大捷]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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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귀주대첩이라 하면 1018년 12월

    소배압(蕭排押)을 총지휘관으로 한

    거란의 제3차 침입 때,

    10만의 거란대군을 상원수 강감찬(姜邯贊) 등이 귀주에서 크게 무찔러

    거란군의 전의를 완전히 잃게 한

    전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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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귀주대첩은 현종 때 거란 침략군을 귀중에서 물리쳐 승리한 싸움 입니다.

    이 대첩은 1019년 2월 1일 강감찬 장군이 이끄는 약21만녕의 고려군이 귀주에서 10만명의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전투로 초기의 기선 제압, 유격전, 청야전술, 포위 섬멸전을 완벽하게 구사하며 승리한 전투 입니다.

    흔히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과 함께 한국사 3대 대첩 이라고 불립니다.

    귀주대첩은 도합 30만명에 달하는 병력이 뒤엉킨 싸움으로 한국사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회전 입니다. 더 정확히는 양측의 규모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전투 중 최대 규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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