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음악 이미지
음악학문
음악 이미지
음악학문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5

슈베르트의 송어의 시대적 배경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슈베르트의 송어에서 음악이 경쾌하면서 빠른 템보를 가지는거 같은데 혹시 시대적 배경은 어떻게 되는지 알고 계실까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슈베르트 송어의 작품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무 살 전후 슈베르트는 엄청난 창작열로 방대한 작품들을 작곡했다. 가곡만 따져 봐도 1814년부터 1817년까지 대략 400편이 넘는 곡들을 남겼다. 특히, 1815년에는 두 편의 교향곡을 비롯해 여러 장르의 곡을 작곡하면서도 145곡의 가곡을 작곡한다. 그중에는 독일 가곡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이 많다. ‘송어’도 그런 명작으로 분류되며, 대중적인 인기도 높다. 슈베르트는 이 곡을 1817년 봄에 작곡했다. 텍스트로 삼은 것은 18세기 독일의 시인 크리스티안 슈바르트의 동명 시로서 전편을 다 작곡한 것은 아니고 마지막 한 연에는 곡을 붙이지 않았다.

    이 곡의 초연 일시와 장소는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으나 슈베르트를 구심점으로 한 예술 애호가들의 사교 모임이었던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에서 슈베르트의 피아노와 바리톤 요한 미하엘 포글(Johann Michael Vogl)의 노래로 이루어진 것은 분명하다. 슈베르트가 이 곡의 초연자인 포글과 알게 된 것은 1817년 초 시인이자 친구인 프란츠 폰 쇼버(Franz von Schober)의 소개를 통해서다. 당시 포글은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활약하는 중견 가수였다. 그는 슈베르트의 가곡을 몇 곡 불러본 후 단번에 슈베르트의 천재성을 간파했고, 이후 헌신적으로 슈베르트의 가곡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 섰다. 또한, 선배이자 성악가로서 슈베르트에게 음악적인 조언을 많이 해준다. 그러면서 슈베르트와 평생 돈독한 우정을 이어나갔는데, 슈베르트보다 29살 연상이었던 포글은 슈베르트가 죽은 후에도 12년을 더 살았다. 서로를 신뢰하게 된 두 사람은 1819년 여름에는 포글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북부의 슈타이아(Steyr)와 린츠(Linz)로 피서를 겸한 연주 여행을 갔는데, 그곳에서 두 달 간 머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편안한 휴식을 취했으며, 종종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한 살롱 콘서트를 가져 인기를 얻었다. 또, 지역의 자산가이자 음악애호가인 실베스터 파움가르트너(Sylvester Paumgartner)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마추어 첼리스트이기도 했던 실베스터는 슈베르트에게 자신을 비롯한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연주할 수 있는 비교적 쉬운 실내악곡을 작곡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아울러 자신이 좋아하는 가곡 ‘송어’의 주제를 넣어달라는 요청도 덧붙였다. 그 결과 피아노 오중주 A 장조 ‘송어’가 만들어졌으며 이 곡의 악보는 1820년 12월 9일 빈에서 한 잡지의 부록으로 출판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슈베르트, 송어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최재오 전문가blue-check
    최재오 전문가23.05.15

    안녕하세요. 최재오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슈베르트는 1797.01.31~1828.11.19 이 시기를 살았어요.

    고전주의 말기와 낭만주의 초기음악가이자 낭만주의 문을 연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 어디선가 강물에서 뀌노는 송어의 모습을 보고 작곡의 소재로 사용했을것 같네요. 가곡으로 만들어져 그 가사내용을 보시면 어부의 마음이 잘 드러나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