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인권선언을 한 키루스란 사람에 대해 알려주세요~
키루스 2세는 기원전 555년 메디아 왕국을 점령하고, 기원전 545년 소아시아를 점령한데 이어 기원전 539년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멸망시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초석을 마련하여 당시부터 왕조의 시작으로 봅니다. 키루스 2세가 기원전 539년에 남긴 원통에는 모든 인종과 종교의 평등, 종교의 자유, 노예제 폐지, 재산권 보장 등을 명시하여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요. 이는 프랑스 혁명 당시 발표된 인권선언문 보다 앞선 인권 선언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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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서악동에 법흥왕으로 추정되는 돌무지덧널 무덤을 발굴중인데 이게 신라역사를 어떻게 바꿀 수도 있는 건가요?
신라 무덤은 마립간에 해당되는 5세기 돌무지 덧널무덤, 그리고 6세기 굴식 돌방 무덤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돌무지 덧널무덤으로 대릉원을 대표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법흥왕릉으로 추정되어온 서악동 4호분은 굴식돌방무덤일 것으로 추정해왔습니다.그런데 기존의 예상을 깨고 대릉원에서 볼 수 있는 돌무지덧널무덤의 흔적인 2개의 단으로 촘촘하게 쌓은 호석층의 동무더기들이 확인됐습니다. 따라서 기존 학설을 깨도 6세기 돌무지덧널무덤일 가능성과 그로 인한 금관 등 유물의 존재를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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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지처라는 말의 뜻이 무엇이고 생긴 유래가 어떻게 되는가요?
조강지처(糟糠之妻)는 糟 (지게미조), 糠 (겨강), 之( 갈지), 妻 (아내처)로 구성된 한자어입니다. 지게미와 쌀경를 함께 먹어온 아내로 가난을 같이 견뎌낸 본부인을 말합니다. 조따르면는 <후한서>에 광무제와 송홍(宋弘) 사이의 일화와 관련됩니다. 송홍은 광무제(光武帝)를 섬겨 대사공(大司空)에까지 올랐습니다. 어느 날 광무제가 미망인이 된 누님 호양공주에게 신하 중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의중을 떠봤다. 호양공주가 송홍을 칭찬했습니다. 며칠 후 광무제는 병풍 뒤에 호양공주를 앉혀놓고, 송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광무제가 송홍에게 물었습니다. “속담에 귀해지면 사귐을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겠지?”라고 하였습니다.송홍이 지체없이 답했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신은 가난하고 비천한 때 사귄 벗은 잊으면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쫓아내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貧賤之友 不可忘 糟糠之妻 不下堂).” 이 말에 광무제와 호양공주는 크게 낙담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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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은 어느시대까지 존재했었나요?
해적의 존재 시기는 인류 문명이 출현한 시기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가장 오래된 해적은 기원전 1400년경 해양민족이라는 불리 해적 집단이 지중해 문명을 공격해 멸망시키기도 했습니다.해적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9세기 즈음 바이킹의 활약입니다. 바이킹은 유럽에 공포를 조성했으며, 봉건제가 강화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영국의 해적은 1640년부터 1684년 세력을 떨쳤습니다.최근 들어서도 소말리아 해안 등에 줄곧 해적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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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금의 이름은 왜 거의다 외자로 지어진것인가요?
조선 시대 왕의 이름은 외자입니다. 일반적으로 '휘'는 '기휘', '피휘'라고 하여 부르지 않아 사용하지 않습니다. 유교 경전인 <춘추>에 주석을 단 <춘추공양전>에 "춘추는 존귀한 사람과 친한 사람, 어진 사람의 이름을 숨겼다.(春秋爲尊者諱 爲親者諱 爲賢者諱)"하였습니다. 해석하면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는 겁니다.그래서 이름이 두 글자인 왕은 즉위 후 한 글자로 개명하기도 한 것입니다. 따라서 쓰지도 부르지도 못하게 했기에 자주 쓰고 많이 쓰는 쉬운 한자는 되도록 멀리하고 자주 쓰이지 않는 어려운 한자로 외자 이름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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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과 비슷한 모양의 탑이 더 있나요?
경주의 불국사는 석가탑(삼층석탑)과 다보탑이 있습니다. 그런데, 삼측석탑의 완전수에 해당하는 숫자 3을 의미하고, 신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3층 석탑은 여러 지역에서 비슷하게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다보탑은 독특한 이형탑의 대표적인 사례로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모양의 탑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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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이유는 단순히 위치 때문일까요?
미국이 강대국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지리적 이점입니다. 미국은 거대 영토와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발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또한 태평양과 대서양과 접해 있어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대전 기간 동안 한번도 본토의 피해가 없었던 나라입니다. 물론 지리적 요인만으로 초강국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리적 이점 이점 외에도 이민자들의 기여와 기술과 노동력이 미국 산업 발전에 미친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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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이 정말로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가요?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 거북선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역사학자들은 거북선의 갑판이 나무로 덮여 잇었고 철판이 사용되지 않았다고 점에서 철갑선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 1862년에 활약한 모니터호가 최초의 철갑선이는 주장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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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은 임진왜란 이후 왜 조선 역사에서 보이지 않을까요?
거북선은 태종 때 처음 기록상에 존재합니다. 조선 초기부터 제작되었지만 적극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중 여러 전투의 근접 전투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여러 실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 수군과의 16전 16승을 거두었습니다. 조선 후기 건조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 거북선은 후순위로 밀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란 후반기에는 거북선의 위에서는 공격할 수 없다는 약점을 파악한 일본군이 그걸 역 이용해 박살내기 해서 왜란 초기만큼 거북선이 위협적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무기 체계와 전략이 등장하면서 거북선의 역할이 축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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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통해서 강대국으로 성장한 국가들은 어떤 나라인가요?
전쟁으로 강대국이 된 나라로 대표적 사례는 몽골제국을 말할 수 있어요. 몽골제국은 징기즈칸이 1206년에 건국하여 정복활동을 통해 33,000,000평방키로미터의 광대한 지역을 차지한 나라로 당시 전세계 면적의 16%를 지배했습니다. 로마제국 5,000,000평방키로미터의 6배 이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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