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여포와 조운(조자룡)이 있는데, 서로 시기는 틀렸지만, 무예 대결을 하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합니다!!!
여포는 삼국지에서 '인중여포, 마중적토'라는 말처럼 최고의 무예를 떨친 인물입니다. 실제로 여포는 관우, 장비, 유비 시 명이 동시에 대적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 무예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삼국지와 연의 모두 여포가 최강이라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조자룡은 촉의 오호대장군 가운데 한명으로 창술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장수로서 용맹과 인덕, 냉철함을 겸비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당양장판파 전투에서 유비의 아들 유선을 구출하며 조조의 대군 사이를 돌파한 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가상 대결에서 무예만 본다면 여포가 조자룡보다 우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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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나온 인물중에서 우리나라로 오거나 후손을 널리 퍼트린 인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갈공명이 증손자 제갈충이 신라 미추왕 시기에 신라로 귀화했다고 합니다. 제갈충은 중국내 정치적 혼란과 가문의 몰락을 피해 신라로 망명했으며, 이후 제갈씨, 제씨, 갈씨 등의 시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제갈씨, 제씨, 갈씨 등은 모두 제갈공명의 후손임을 내세우며, 신라와 고려 시기 이후로 한반도에 널리 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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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고구려는 사실상 같은 뿌리가 아닌가요? 이 시대에도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을 했나요?
백제와 고구려는 혈연적으로 연결됩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의 건국 시조인 온조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과 관계되며, 어머니 소서노, 형 비류와 함께 남하여 백제를 건국하였다고 합니다.또한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와 예맥의 계통으로 문화적으로 공유하며, 언어적으로 상당히 유사합니다. 이런 점에서 같은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가까운 집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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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농촌에서 나타난 광작현상은 무엇인가요?
조선 후기 논농사에서 모내기, 밭농사에서 견종법 등 농업 기술의 보급으로 노동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적은 농민이나 지주가 경작지 규모를 크게 늘려 농사를 짓는 것을 광작이라 합니다. 즉 한 사람이 경작하는 토지 면적이 크게 늘어나 노동 생산성이 향상된 현상입니다. 광작은 농업 기술의 발전과 토지 소유 및 경영 방식의 변화에 따라 나타난 현상으로 조선 후기 농민 계층의 분화로 부농이 출현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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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문에 창호지를 사용하는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창호에 한지를 사용한 역사는 삼국시대 이후로 판단됩니다. 종이는 기원전 2세기 중국에서 발명되어 이후 한반도에 전래되었습니다. 6~7세기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자체적으로 이미 제지술이 발전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고구려의 담징은 610년 종이와 먹, 맷돌을 일본에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이 무렵 이미 한반도에서는 종이 생산과 활용이 활발했다는 근거입니다. 창호지의 직접적인 사용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신라, 고려 시대의 건축과 문헌에 창호에 관한 기록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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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케돈 공의회 이후에 발생한 종교적 분열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451년 소집된 칼게돈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간에 대한 교리(양성론)에 대해 기독교 내부 분열을 초래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한 인격 안에 지닌다는 결론에 대해 단성론을 따르는 이집트, 시리아, 아르메니아, 에티오피아 등의 교회 등은 따르지 않았습니다.반면 로마 교회, 동방 정교회 등은 칼게돈 공의회 결정을 수용하여 주류 교회로 남았습니다. 이로써 기독교는 칼게돈파와 비갈게돈파(오리엔탈 정교회)로 분열되데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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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발굴된 티술스키 공주의 미이라가 8억년전 것이라는 진위는?
러시아 타술스키 공주 미라아는 '8억 년전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로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1969년 러시아 탄광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미라로 현지 주민들의 증언과 일부 미확인 보도 등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공식적으로 근거가 미약합니다.특히 인류는 과학적으로 30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했습니다. 또한 당시로는 다세포 생물도 거의 없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8억년이라는 지나치게 오래전의 미라는 인류학적, 진화론적으로도 신빙성이 없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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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포물은 어떻게 해서 나쁘기운을 물러가게 했나요?
창포물은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단오날 창포물에 머리를 감거나 목욕을 하면 창포의 강한 향이 잡귀와 악귀를 쫒고 병을 예방한다고 믿었습니다. 창포는 아사론 등 해충을 쫒는 향과 성분이 있어 실제로 벌레나 곤충을 물리치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창포는 실제로 향이 좋고 머릿결을 부드럽게 해주며,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게 한다는 민간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창포의 향은 불안, 초조를 완하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이와 같은 풍습은 단오가 여름철, 질병과 잡귀가 많아지는 시기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으며, 물론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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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은 수나라군을 물리친 살수대첩 주인공으로 을지라는 성씨가 대한민국에서 존재하고 있는 지궁금합니다.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은 살수대첩의 영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 우리나에서 '을지'르는 성을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을지씨는 고구려 시기에 존재했으나 고려 시대 이후 후손 일부가 '돈'씨로 바뀌었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2015년 통계청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을지"씨를 쓰는 사람은 단 5명에 불과하며, 목천을 본관으로 쓰는 돈씨도 소수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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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원효대사는 진짜 해골물을 마셨나요?
원효 대사의 해골물 마신 일화는 역사적 사실이기라기 보다는 불교적 깨달음을 상징하는 설화입니다. 설화에 의하면 원효 대사는 의상 대사와 함께 당나라 유학 떠나려 하였지만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내다 목이 말라 물을 마셧다고 합니다. 아침에 보니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합니다. 이 설화를 통해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불교적 가르침을 강조하기 위한 이야기로 실제로 해골물을 마셨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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