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의 어진이 공개되었는데 업적도 알려주세요.
어진은 임금의 초상화입니다. 우리니라 어진은 대부분 소실되었는데, 태조 이성계 어진 등 10점 내외만 남아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말 무장으로 쌍성총관부 수복과 홍건적과 왜구 토벌을 통해 역량을 인정받게 됩니다. 특히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과 우왕 세력을 제거했으며, 이를 통해 신진사대부와 결탁하여 정국을 주도할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후 과전법을 통해 토지 겸병과 사전을 혁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도전 등 신진 사대부를 중용해 유교 이념에 기초한 국가 체계 설계하게 했습니다. 결국 혁명파 신진사대부의 지지를 바탕으로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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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활약은 어떤 것인기요?
조선건국동맹을 이끌고 있었던 여운형 선생은 해방 당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만나 한국인의 정부 수립에 대한 약속을 보장받고 8월 16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안재홍과 더불어 좌우합작 형태로 건국동맹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로 개편하였습니다. 우선 행정권 이양을 위해 지방에 지회를 설치하고, 치안대를 조직했습니다. 하지만 미군이 진주한다는 소식에 9월 7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해체하고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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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사학이 어떤 측면에서 식민사관을 극복했다고 하나요?
일제는 식민사관을 통해 한국의 역사를 왜곡, 부정하였으며, 이를 통해 열등감을 심화시켜 효율적으로 식민통치를 하고자혀엿습니다. 특히 조선사편수회를 중심으로 한국사의 타율성, 정체성, 당파성을 부각시켰습니다.식민 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한국사 연구가 있었는데, 사회 경제사학이 대표적입니다. 사회 경제 사학은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를 통해 한국사도 세계사적 일원론적 역사발전 법칙에 따라 발전해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을 문제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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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문화통치를 표방하면서 행했던 보통경찰제의 문제가 무엇인가요?
일제는 3.1운동 이후 무단통치로는 한국인의 식민 통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1919년 3대 총독 사이토가 부임하면서 이른바 문화 통치를 표방하였습니다.특히 헌병 경찰 통치를 폐지하고 보통 경찰 제도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헌병의 제복만 바꿔입은 것에 불과하였으며, 예산과 기관의 수를 늘려 감시를 강화한 것입니다. 게다가 치안유지법을 시행하여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더욱 치밀하게 탄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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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때 노비종모법을 시행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임진왜란 이후 양반 중심의 신분제가 동요되었습니다. 즉 양반층은 대폭 늘어나지만 하층민에 해당하는 중인, 상민, 노비층이 축소되었습니다. 특히 상민층의 축소는 국가 재정을 약화시켰습니다.따라서 영조는 1731년 노비종모법을 시행하여 천민 남성과 양인 여성 사이에 낳은 자녀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 양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상민의 숫자를 늘려 국가 재정을 확충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 덕분에 노비 비율이 급감하여 신분제 붕괴를 촉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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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부 당시 진보당 사건은 무엇인가요?
진보당 사건은 1958년 조봉암과 진보당을 간첩죄로 몰아 해산시킨 사건입니다. 조봉암은 1956년 3대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30%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은 조봉암을 위협적인 인물로 여겨 탄압을 한 것입니다. 특히 조봉암이 만든 진보당의 당론으로 평화통일으로 하자 북한과 내통하였다는 명목으로 체포한후 재판을 통해 간첩죄로 몰아 사형을 확정하고, 진보당을 해산시킨 정치 탄압입니다. 진보당 사건은 이승만 정부의 장기 집권을 위한 정치 탄압 사건으로 최초의 정당 탄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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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제1차, 제2차 왕자의 난 발생했던 이유가 뭔가요?
조선 건국 초 왕자의 난은 왕위 계승과 왕권 다툼으로 일어났습니다. 1398년에 일어난 1차 왕자의 난은 태조 이성계이 계비 강씨 소생인 방석을 세자로 책봉과 정도전의 사병 혁파에 반발하여 방원 등 한씨 소생 왕자들이 반발하여 일어났습니다. 이방원 등이 방석, 방번 형제와 정도전, 남은 등을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했습니다.1400년에 일어난 2차 왕자의 난은 이방원이 실권을 장악하자 방간 등의 반발로 일어났습니다. 결과적으로 방간 등이 제거되고, 이방원의 세력이 확대되면서 일단락되었습니다. 왕자의 난은 왕권 세습 다툼, 건국 후 정치, 군사적 불안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일어난 사태였습니다. 하지만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이방원이 태종에 즉위하면서 왕권이 안정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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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이 고대사에 있어서는 교류했던 부분도 많았던것 같은데 고대사 공통역사교과서를 만들수 있을까요?
과거 2002~2006년 당시 한중일 3국이 동아시아공통역사교과서 연구를 시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고구려 독립국 주장에 대해 중국은 중국의 속국이라 강조하고, 일본은 임나일본부 주장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즉, 완전한 공통 교과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다만 교류사 중심의 상호 이해 교재, 각국의 관점을 주석으로 표기하는 행태는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다만, 근대사에서 2005년 한중일 학자 교사들이 공동집필한 동아시아 근현대사 부교재인 <미래를 여는 역사>를 집필한 사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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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을 본적이 있는데 옛날에는 관상가도 직업이었다고 하던데, 관상학이 따로 있나요?
관상학은 얼굴, 신체 특징을 통해 사람의 성격, 기질, 운명 등을 점치는 점술학입니다. 일찌기 춘추전국시대 중국 숙복이라는 사람이 골상학 연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송나라 마의도자가 체계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양에서도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가 <관상학>을 집필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관상학이 삼국시대에 전래된 것으로 봅니다. 조선시대 왕실, 양반층에서 인재 등용, 세자빈 간택에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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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어느종교를 믿고싱는지 궁긍해여?
러시아 국민들의 70~80%는 러시아 정교회를 압도적으로 믿습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동로마 제국 당시 그리스 정교회가 동유럽으로 전파되면서 러시아에 정착된 종교입니다. 988년 키예프 루스 국교화 이래 100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기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10%정도가 이슬람교, 그리고 불교와 개신교가 소수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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