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의 활동에 대해 궁금합니다.
베트남 전쟁 중 한국군은 1965년부터 1073년까지 총 9개사단 37만명이 파병되었습니다. 대표적인 파병 부대로 맹호부대가 유명하며, 퀴논에 주둔하였습니다. 고보이, 푸캇 작전으로 월맹 1만 8천명을 사살하였다는 공식 기록이 있습니다. 한국군의 작전이 치열했던 이유는 생포보다 전과 우선이었기 때문이고, 6.25 전쟁 트라우마도 적에 대한 섬멸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합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였는데, 이 때문에 한국군의 잔혹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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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국과 제주의 역사에 대해 궁금합니다.
탐라국은 고대 제주도에 존재했던 국가였습니다. 삼한시대부터 고려 숙종 10년 탐라군 설치까지 약 1500년간 존재했습니다. 5세기 백제에 속국이 되었다가 662년 신라에 항복하였습니다. 고려 시대 자치 속국이 되었으며, 1105년(숙종 10년) 독립국의 지위가 박탈되고 전라도의 지방 행정구역으로 개편되었습니다. 1153년에는 탐라현으로 완전히 편입되었습니다.제주도 방언인 탐라어는 중세 한국어 유입전 토착어로 추정합니다. 한국어족, 일본어족, 오스트로네시안계 등 여러 설이 있으나 증거가 부족합니다. 초기 언어 장벽이 있었지만 5세기 이후 백제어의 영향으로 점차 한국어계로 전환되어 소통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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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어떤 계기로 도로 인프라를 크게 발달시켰나요?
로마의 영광과 관련된 관용구 가운데, "모든 길은 로마로 향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로마는 로마는 도로망을 통해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원전 312년에 건설된 아피아 가도는 가장 대표적인 도로입니다. 도로를 통해 물자의 원활한 유통뿐만아니라 군사적 인프로로 식민지 확장 및 지배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로마의 도로는 다층 포장 구조로 기초는 큰 돌로 기반을 다지고, 그 위에 자갈층, 그리고 석회와 자갈로 핵심층을 다지고, 표면은 평평한 직사각형의 돌로 정밀 포장하여 견고했습니다. 이 도로를 따라 로마의 전차가 빠르게 전장과 식민지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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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동묘가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 할 수 있나요?
'동묘'는 중국 삼국지의 영웅 관우를 모신 사당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와 외교 관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601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조선을 구하면서 관우의 신령을 도왔다는 믿었습니다. 전쟁 이후 명나라 황제(신종)가 조선에 관우 사당 건립을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충의와 용맹의 상징인 관우를 통해 조선에게 충성한 요구한 것입니다. 즉 정치적으로 명나라에 대해 감사와 충성 과시, 관우를 통한 왕권 안정의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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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는 문구는 신채호 선생님 직접 인용한 것은 아닙니다. 신채호 선생은 국권 피탈 시기에 <독사신론>을 통해 역사 서술에서 '민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민족주의 사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식민사관에 대항하여 민족 의식을 바탕으로 한 역사 연구에 집중했는데,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와 같은 역사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즉, 신채호 선생님은 역사를 통해 민족의식을 강화하고, 이는 국권 회복과 독립과 귀결된다고 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민족주의 역사관이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비슷한 표현으로 인용되면서 대중들에게 각인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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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이 민족혁명당을 조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원봉은 신흥무관학교 재학중 1919년 중퇴하고 의열단을 조직하여 의열 투쟁을 통한 독립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하지만 1920년 후반 개별적 의열투쟁의 한계를 인식하고 조직적인 무장투쟁과 대중 투쟁으로 전환하였습니다. 특히 당시 이념 대립으로 독립운동가들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1935년 난징에서 민족혁명을 조직하였습니다. 이는 일제에 맞서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일전선의 형성이 우선해야 한다는 인식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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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은 출신이 어떻게 되나요?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은 '가문을 알 수 없음'이록 명시되어 있어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귀족으로 보는 주장으로 '을씨 귀족'의 대표적 인물로 을파소, 을두지 등을 통해 추정합니다. 또는 '목천 돈씨' 시조설로 돈씨 가보에서 을지문덕 후손이 돈씨로 변경하였다는 주장입니다. 혹은 선비족의 귀화하여 '을지'씨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하지만 을지문덕의 출생, 생애, 그리고 후손에 대하여 기록의 부재로 명확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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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생각하는 국경선에 관한 질문입니다!
조선왕조의 국경선은 세종 때 4군 6진 개척으로 여진족을 몰아냈습니다. 하지만 청의 건국 이후 국경선이 모호하여 숙종 때(1712년) 당시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국경선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정계비의 내용에 따르면, '서위압록, 동위토문'으로 명기하였습니다. 문제는 압록강을 경계로 하는 것은 명확한데, 1885년 이후 토문강의 위치를 놓고 조선과 청의 국경 분쟁이 있었으며, 이후 간도 귀속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1909년 일본과 청의 '간도협약'에 의해 두만강 이북 지역의 간도가 청의 영토로 간주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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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사는남자 어디까지가 실화인가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의 영월 청령포 유배 생활을 다룬 실화 기반 영화입니다. <실록>에 따르면, 호장 엄홍도는 단종 악몽 시 밤마다 달려와 위로 하였다고, 단종의 장례를 직접 치렀습니다. 한명회와 관련된 내용도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단종의 자결 장면 등은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이 반영된 창작입니다. 실록에는 목을 매었고, 야사 연려실기술은 하인의 활줄 도움으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실록과 달리 하인의 도움을 받아 활줄로 자결한 것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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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별 제사를 기리는방식 차이가 궁금해여?
동아시아 지역의 여러나라들은 조상을 기리는 제사를 지냅니다. 하지만 각국의 제사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조상의 기일 제사와 설과 추석 명절에 차례를 지냅니다. 상차림은 고기, 밥, 국, 과일 등을 올립니다. 그리고 중국은 춘절 등 명절 위주로 조상에 제사를 지냅니다. 돼지고기, 오리, 생선, 과일, 술 등을 간소하게 상차림으로 합니다. 일본은 불교식과 신토가 결합된 형태로 주로 8월 오봉과 정월에 제사를 지냅니다. 사당과 집에 가족 불단이 있습니다. 쌀, 모치, 생선, 야체, 술 등을 상차림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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