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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흥선대원군은 왜 대립하게 되엇나요?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대립 이유로는 고종의 집권 초기와 다르게 성장하면서 왕권 강화 과정에서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특히 서원 철폐 등의 이견으로 대립되었으며, 최익현의 탄핵 상소로 물러나게 됩니다. 아내 명성황후와 갈등 등으로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임오군란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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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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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가 미노스에게 선물한 탈로스를 움직이게 만든 방법은?
탈로스가 능력을 가진 방법에 대해서는 신화마다 다르지만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불과 금속을 다루는 신으로 탈로스와 같은 기계적인 생명체를 창조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또는 프로메테우스의 도움으로 인공지능 능력 구현에 기여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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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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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에게 아테나 여신이 신들의 무구를 빌려다 줬다고요?
아테나가 메두사를 처치하기 위해 페르세우에게 빌려서 가져다 준 무기는 하데스의 투명 모자인 '퀴네에', 아폴론의 '아프테미스의 활', 아테나의 방패 아이기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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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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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 세상에 보물이 남아 있을까요?
아직도 보물을 찾는 것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미 정글 깊숙에 숨겨져 있는 엘도라도 황금도시를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숨겨두었다고 알려진 보물을 찾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어요. 가장 큰 보물 찾기는 1227년에 징기츠칸의 무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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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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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인권선언을 한 키루스란 사람에 대해 알려주세요~
키루스 2세는 기원전 555년 메디아 왕국을 점령하고, 기원전 545년 소아시아를 점령한데 이어 기원전 539년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멸망시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초석을 마련하여 당시부터 왕조의 시작으로 봅니다. 키루스 2세가 기원전 539년에 남긴 원통에는 모든 인종과 종교의 평등, 종교의 자유, 노예제 폐지, 재산권 보장 등을 명시하여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요. 이는 프랑스 혁명 당시 발표된 인권선언문 보다 앞선 인권 선언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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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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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서악동에 법흥왕으로 추정되는 돌무지덧널 무덤을 발굴중인데 이게 신라역사를 어떻게 바꿀 수도 있는 건가요?
신라 무덤은 마립간에 해당되는 5세기 돌무지 덧널무덤, 그리고 6세기 굴식 돌방 무덤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돌무지 덧널무덤으로 대릉원을 대표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법흥왕릉으로 추정되어온 서악동 4호분은 굴식돌방무덤일 것으로 추정해왔습니다.그런데 기존의 예상을 깨고 대릉원에서 볼 수 있는 돌무지덧널무덤의 흔적인 2개의 단으로 촘촘하게 쌓은 호석층의 동무더기들이 확인됐습니다. 따라서 기존 학설을 깨도 6세기 돌무지덧널무덤일 가능성과 그로 인한 금관 등 유물의 존재를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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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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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지처라는 말의 뜻이 무엇이고 생긴 유래가 어떻게 되는가요?
조강지처(糟糠之妻)는 糟 (지게미조), 糠 (겨강), 之( 갈지), 妻 (아내처)로 구성된 한자어입니다. 지게미와 쌀경를 함께 먹어온 아내로 가난을 같이 견뎌낸 본부인을 말합니다. 조따르면는 <후한서>에 광무제와 송홍(宋弘) 사이의 일화와 관련됩니다. 송홍은 광무제(光武帝)를 섬겨 대사공(大司空)에까지 올랐습니다. 어느 날 광무제가 미망인이 된 누님 호양공주에게 신하 중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의중을 떠봤다. 호양공주가 송홍을 칭찬했습니다. 며칠 후 광무제는 병풍 뒤에 호양공주를 앉혀놓고, 송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광무제가 송홍에게 물었습니다. “속담에 귀해지면 사귐을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겠지?”라고 하였습니다.송홍이 지체없이 답했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신은 가난하고 비천한 때 사귄 벗은 잊으면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쫓아내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貧賤之友 不可忘 糟糠之妻 不下堂).” 이 말에 광무제와 호양공주는 크게 낙담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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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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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은 어느시대까지 존재했었나요?
해적의 존재 시기는 인류 문명이 출현한 시기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가장 오래된 해적은 기원전 1400년경 해양민족이라는 불리 해적 집단이 지중해 문명을 공격해 멸망시키기도 했습니다.해적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9세기 즈음 바이킹의 활약입니다. 바이킹은 유럽에 공포를 조성했으며, 봉건제가 강화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영국의 해적은 1640년부터 1684년 세력을 떨쳤습니다.최근 들어서도 소말리아 해안 등에 줄곧 해적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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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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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금의 이름은 왜 거의다 외자로 지어진것인가요?
조선 시대 왕의 이름은 외자입니다. 일반적으로 '휘'는 '기휘', '피휘'라고 하여 부르지 않아 사용하지 않습니다. 유교 경전인 <춘추>에 주석을 단 <춘추공양전>에 "춘추는 존귀한 사람과 친한 사람, 어진 사람의 이름을 숨겼다.(春秋爲尊者諱 爲親者諱 爲賢者諱)"하였습니다. 해석하면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는 겁니다.그래서 이름이 두 글자인 왕은 즉위 후 한 글자로 개명하기도 한 것입니다. 따라서 쓰지도 부르지도 못하게 했기에 자주 쓰고 많이 쓰는 쉬운 한자는 되도록 멀리하고 자주 쓰이지 않는 어려운 한자로 외자 이름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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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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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과 비슷한 모양의 탑이 더 있나요?
경주의 불국사는 석가탑(삼층석탑)과 다보탑이 있습니다. 그런데, 삼측석탑의 완전수에 해당하는 숫자 3을 의미하고, 신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3층 석탑은 여러 지역에서 비슷하게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다보탑은 독특한 이형탑의 대표적인 사례로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모양의 탑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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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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