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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벨벳혁명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벨벳 혁명은 1989년 11월 17일부터 12월 29일까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비폭력 민주화 혁명입니다.혁명의 배경은 소련 고르바쵸프 대통령의 페레스토로이카, 글라스노스트 선언로 냉전이 약회되고, 동유럽의 민주화 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게다가 60년대 민주화를 갈망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은 1968년 소련군의 침공으로 좌절되어 오랫동안 공산당의 감시와 통제 하에 있었습니다. 결국 동유럽의 민주화를 갈망하는 벨벳혁명이 일어나 구스타프 후사크 대통령이 이끄는 공산당 정권이 붕괴되고 민주적인 하벨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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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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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률이라는 것은 어떤 법률인가요?
대명률은 명나라 태조 홍무제 주원장이 1367년 제정한 법률입니다. 대명률은 당나라 당률, 원나라 원전장을 참조하여 제정되었다고 합니다. 주로 형벌, 범죄에 대해 조선에서 활용한 법령으로 근본이 된 법전입니다. 다만 조선의 실정에 맞지 않은 수정하여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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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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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정변은 성공한 혁명인가요?
5.16 군사 쿠데타, 군사정변에서 '쿠데타'는 폭력 및 불법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어 사건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변은 비합적으로 정부를 전복하는 것이지만 혁명보다는 규모가 적거나 특정 그룹이 권력의 재편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따라서 쿠데타는 불법적인고, 강제적인 성격을 띠며, 정변은 정치적 변화로 좀 더 넓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따라서 5.16 군사 쿠데타는 성공한 혁명이 아니라, 성공한 쿠데타로 봐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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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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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정변? 왜 정변인 건가요?
5.16 군사 쿠데타, 군사정변 두 용어 모두 유사하지만 세부적인 측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어요. 쿠데타는 주로 군사력이나 소수의 정치세력에 의해 기습적으로 이루어지는 권력 탈취 행위입니다. 비밀리에 계획하여 정부를 전복하고 새로운 권력을 세우며, 불법적이고 국제적으로도 비난을 받습니다. 반면 정변은 기존의 정치 체제 내에서 발생하는 변화로, 혁명보다는 규모가 작거나 특정 그룹 내의 권력 재편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습니다.즉, 쿠데타는 정변에 비해 불법적이고 강제적인 성격이 있으며, 정변은 정치적 변화의 한 형태로 좀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이런 측면에서 5.16 군사 쿠데타를 정변으로 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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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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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케제 햄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레베케제 햄은 독일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 지역에서 유래된 햄으로, 스팸의 원조라고 합니다. 독일어의 레버(eber)는 간이고 케제(Käse)는 치즈인데, 사실 레버케제는 간으로 만든 치즈가 아닙니다.간단하게 말하면 잡다한 것을 섞어서 만든 소시지의 일종입니다. 레베케제는 독일 전역에서 많이 먹지만 그 원조는 바이에른입니다. 즉 레베케제는 독일 전역에 퍼진 바이에른 문화입니다. 이름의 유래는 바이에른의 방언에서 유래한 것으로 레베는 일종의 자투리라는 뜻이고, 케제는 상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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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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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쿠테타가 안일어 났다면 어떻게 됬을까요
1961년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군부의 성장과 장면정부의 무능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4.19 혁명으로 새롭게 수립된 장면정부는 이승만 정부 시기에 숨죽여 있던 국민들의 민주화, 통일 요구 등을 제대로 수용하여 개혁을 수행할 정도의 능력이 없고 파벌싸움과 파벌 싸움만 지속하였습니다.즉, 군사정변이 없었으면 이와 같은 혼란은 한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군사정변에 대해 시민들이 군부에 박수를 보낸 이유입니다. 그러나 장면 정부는 현재에서 평가해도 민주주의와 통일 운동이 활성화된 시기입니다. 따라서 일정 기간이 지나 자정된다면 우리나라는 아시아 최초의 시민혁명을 배경으로 민주화 수준이 높아졌을 것입니다. 즉, 이후 군사 독재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5.16 군사정변 당시 정변 세력들이 발표한 혁명 공약대로 '민정이양 약속'을 지켰다면 긍정적인 평가도 받았을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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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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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정명순행(正名順行)"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정명순행'은 이름이 바르면 모든 일이 순조롭다는 의미로 공자의 사상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정치를 맡기면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는 일부터하겠다.'고 했습니다. 즉 실제에 부합하는 이름을 찾는 '정명'이 정치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에서 잘 드러납니다. 즉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 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것으로 각자 제자리에서 이름값을 하자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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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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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건의 훈요십조를 알려주세요.
훈요 10조는 고려 태조 26년(943)에 남긴 10가지 유훈입니다. 문서는 고려왕실의 헌장으로, 태조의 신앙, 사상, 정책, 규범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내용을 담았습니다.오늘날에도 본받을 만 내용으로 7조의 내용을 새겨볼만 합니다. "임금이 신민의 마음을 얻는 다는 것은 매우 어려우나 그 요체는 간언(諫言)을 받아들이고 참소를 멀리하는 데 있으니, 간언을 좇으면 어진 임금이 되고, 참소가 비록 꿀과 같이 달지라도 이를 믿지 아니하면 참소는 그칠 것이다. 또, 백성을 부리되 때를 가려 하고 용역과 부세를 가벼이 하며 농사의 어려움을 안다면, 자연히 민심을 얻고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편안할 것이다...."입니다. 7조의 내용을 통해 정치인이 가져야할 여론 정치, 민심을 위한 정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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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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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많은 궁궐을 지었는데, 궁궐이 다 사용되었나요?
조선시대 궁궐은 필요에서 따라 법궁과 이궁을 오가며 활용하는 양궐 체제입니다. 조선의 5대 궁궐은 법궁인 경복궁, 청덕궁, 경희궁, 창경궁, 경운궁(덕수궁)입니다.경복궁은 가장 먼저 지은 곳으로 왕자의 난 때 뿌려진 피로 왕들이 꺼려했다고 합니다. 창덕궁은 가장 많이 사용한 궁궐이고,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 부릅니다. 창경궁은 세종이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궐입니다. 경희군은 광해군이 능양군의 집을 허물고 지은 궁궐입니다. 경운궁(덕수궁)은 월산대군 사저를 행궁으로 삼다 광해군이 경운궁으로 개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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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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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라는 인물은 혹시 실존 인물인가요? 아니면 문학작품 속의 인물인가요?
변강쇠는 작자, 연대 미상의 판소리의 주인공입니다. 필사본으로 '가루지기타령', '횡부가'의 주인공이라고도 합니다. 조선말기 신재효에 의해 '변강쇠가'가 전합니다. 천하잡놈인 강쇠는 남쪽지방에서 북쪽지방으로 올라오고, 팔자에 과부로 운명지어 마을에서 쫒겨난 옹녀는 북쪽지방에서 남쪽지방으로 내려와 개성 인근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음탕한 남녀, 유랑 등 금기와 관습 등이 소재로 쓰여진 비극적 생활상을 희극화한 판소리입니다. 따라서 변강쇠는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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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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