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살아가면서 시간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하지않더라도 늘 인식한다. 지금의 시간 개념이 정착된 시기는?
우리가 쓰는 시간 개념은 19세말에 정해진 것입니다. 이전에는 각 도시, 마을마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자신들만의 지역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세 말 철도 열차 시간을 맞추고, 국제 전신 통신에 일정과 날짜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표준시와 시간대 체계가 필요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1884년 국제 자오선 회의에서 25객 대표들이 모여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 자오선을 본초 자오선으로 채택하고, 지국를 경도마다 1시간씩 차이을 내어 24시간대 표준 시간대를 합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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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의 유래가 있나요 궁금합니다
스승의 날은 1958년 충남읜 강경여자고등학교의 청소년 적십자(RCY) 단원들이 퇴직, 병중이신 선생님들에 대한 봉사활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후 5월 16일 '은사의 날'로 확대되다가 1965년 교직원 단체가 계레의 참스승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기념하기 시작하면서 일반화되었습니다. 따라서 5월 15일은 스승을 공경하는 마음, 세종대왕 탄인일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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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페스탈로치는 교육계에 어떤 업적을 남겼나요.
페스탈로치는 교육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아동을 인격 있는 사람'으로 보고 지, 덕, 체를 함께 키우는 전인교육의 선구자입니다. 즉, 그는 아이의 나이, 발달 단계, 성향, 감정을 존중하는 아동 중심 교육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페스탈로치는 머리, 손, 심정으로 인간을 구분하고 이 3가지 측면를 조화로운 발달(전인교육)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페스탈로치는 현재의 아동 중심 교육, 인성, 생활 중심 교육, 평등 교육에 깊은 영향을 남긴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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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를 왜 무덤이라하나요? 덤이없어서 그런가요
무덤은 '묻다'의 '묻'과 엄이 결합된 단어로 묻은 곳, 장사 지내는 곳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무덤은 죽은 사람을 땅에 묻어 두는 곳을 말합니다. 즉, 무덤은 순수 우리말의 묻다에서 유래된 것이며, 한자로는 “묘(墓)"가 사람을 묻은 곳으로 같은 의미입니다. 반면 "분(墳):은 흙을 높게 쌓은 봉분이 있는 무덤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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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들은 매일 5끼의 식사를 했다고 하는데, 실제 건강 상태는 어떠했나요?
조선시대 왕들은 하루 5끼를 먹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보통 초조반, 아침, 점심, 간식, 저녁, 야식처럼 여러번 나뉘어 먹었습니다. 이렇게 여러번 먹다보니 세종과 같이 건강이 좋지 않은 국왕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국왕은 긴 업무시간과 적은 운동량으로 비만, 고혈압, 당뇨 같은 성인병 위험이 높았습니다. 반면 영조는 소식, 규칙적인 생활 습관, 비교적 절제된 식사를 유지하여 장수를 한 국왕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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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을 합병 대신 만주국처럼 만들려고 했다는데
물론 이토 히로부미의 한국 통치 방식은 을사늑약에서도 반영되었듯이 명목상으로는 강제병합이 아닌 대한제국의 황실을 유지하면서도 외교권, 행정권 등 흡수하는 보호국, 간접 통치 형태였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보호국에서 내부 자치, 그리고 일본화라는 단계별 식민지입니다. 이는 영국, 프랑스 등의 식민지를 확대하는 과정과 동일합니다. 즉 명분상 독립, 자치를 허용하는 것처럼 하여 국제적 반발을 줄이고, 결국에는 일본에 편입하는 것입니다. 만주국도 국제연맹의 반발이 있었기에 겉으로는 독립국으로 포장된 괴뢰국이며, 일본에 의해 관리된 체제였습니다. 즉 결국에는 일본에 편입되는 절차를 밟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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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스승의 날 유래와 역사적 사제 관계에서 배울 현대적 교육의 가치는?
'스승의 날'은 1958년 충청남도 강경여자고등학교 RCY 단원들이 세계 적십자의 날을 맞아 병중에 계시거나 퇴직한 선생님을 위로하는 봉사활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후 1963년 5월 24일 "은사의 날", 1964년 '스승의 날'로 바뀌었으며, 1965년 교원단체가 주관으로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 스승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와 과학, 역법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들의 스승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작용하여 세종의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즉 세종처럼 모든 이를 열린 지식과 교육으로 품는 스승을 기리는 날이란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서원은 16세기 사림들이 선현들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사당이며, 교육 기관입니다. 그리고 성균관은 본래 고려시대에 만들어져, 조선시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유학을 정립한 공자와 성현들을 제사지내고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입니다. 서원과 성균관은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만이 아니라 문답과 토론 속에서 학문을 길렀습니다. 오늘날의 학교 현장에서도 질문, 토론, 피드백을 중시하는 교육을 지향하는 것도 상통합니다. 뿐만 아니라 서원과 성균관에서는 제자의 잘못은 스승도 책임을 지는 책임 공유 윤리와 서로 신뢰하는 소통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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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정부가 9개월로 끝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4.19혁명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사건입니다.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은 무너지고, 새로운 선거에 의해 민주당이 압승하였으며, 양원 투표에 의해 장면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장면 정부 내내 민주화와 통일 운동의 열기가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장면 정부는 국민들의 열망을 받아낼 능력이 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신파와 구파의 파벌 싸움만 있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혼란 상황에서 1961년 군인들에게 사회 안정을 구실로 군사정변의 빌미를 준 것입니다. 즉, 5.16 군사정변으로 장면 정부는 9개월 만에 단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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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해요
2,000
고려시대 입성책동이란 무엇인가요?
고려말 입성책동은 원간섭 시기 고려를 원나라의 지방 행정구역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말합니다. 당시 고려는 원과 왕실 귀족간의 혼인과 의존 관계로 자주성이 크게 상실되었습니다. 비록 독립국을 유지하였으나 원에 의존적인 권문세족(부웒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원의 지방, 즉 속국으로 편입을 주장한 것입니다. 4차례의 입성책동이 있었지만 고려 왕실과 일부 관료 등의 반발로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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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시험에 생원시와 진사시가 있던 데 차이점을 알고 싶습니다.
조선시대 문신 관료를 선발하는 문과는 소과와 대과로 크게 구분합니다. 소과는 대과를 치르기 위한 예비시험으로 생진과라고도 합니다. 생진과는 생원과 진사시로 구분하는데, 생원시는 유교 경전에 해박함을 평가하고, 진사과는 문장에 탁월한 인재를 선발합니다. 두 시험 모두 3년마다 시행하는 식년시로 각각 100명이 선발됩니다. 각 도 감영에서 인구 비례에 의해 지역별로 각각 700면이 선발하고, 초시 합격생을 대상으로 한성의 예조에서 주관하여 복시를 시행합니다. 생원과 진사시에 합격하면 백패를 부여받고, 낮은 관리나 성균관 입학, 또는 대과 응시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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