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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이라는 소설은 지금의 시대에도 영향을 주는 소설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데미안>이라는 소설은 지금 시대에도 많이 읽히고 있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명작입니다. 한국의 작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로 자신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던 어린 시절의 주변 인물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홀로 설 수 있는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데미안>의 경우 청소년기, 성인이 된 후, 그리고 중년이 된 후 읽었을 때 또다른 감동을 주는 소설로 한번 읽고 덮는 책이 아닌 늘 나의 삶과 함께 할 수 있고 이야기는 그대로지만 그 감동은 나와 함께 자라나는 생물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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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데 이게 정말 특수부대, 전술과 관련이 있나요? (ai 답변 절대 x)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암순응과 마찬가지로 명순응이 있습니다.밝은 빛에 반응하는 원추세포와 어두운 곳에서의 약한 빚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간상세포를 주위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게 하여 시각 상실 시간을 줄이는 것입니다.암순응은 서서히 자연스레 되지만 명순응은 빠르게 적응되므로 인위적으로 말씀하신 방법으로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차량 운전 시 어두운 터널을 주행하다 밝은 곳으로 나오면 눈부심으로 앞이 잘 안보이게 되는데 나오기 직전 네비게이션의 밝은 빛을 잠시만 봐도 터널 나올 시 회복이 빨라질 수 있습니다. 원래도 명순응은 수초에서 1분 이내로 암순응보다 적응이 빠른데 먼저 밝은 빛을 제공하여 빨리 적응시킬 수 있습니다. 보통 플래쉬 불빛을 사용한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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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스토리의 구성이 비슷하다고 해서 모든 작품을 표절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권선징악의 스토리나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뻔하고 익숙한 구성의 작품들이 지금도 엄청 많지만 그 작품들을 표절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년)은 황석영의 단편소설 '아우를 위하여'(1972년)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는데 이 문제는 문학평론가 반경환이 2004년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고발한다'는 책을 통해 이 같이 주장했는데 그는 두 작품의 주제, 등장인물, 이야기의 구조와 전개방식이 비슷하다고 지적했습니다.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황석영은 2010년 이 이야기를 풍문으로 들은 적이 있지만 일부러 확인해 본 적은 없다고 하며 그렇게 따진다면 작품과 영화, 드라마, 만화에 이르기까지 내 작품의 모티브를 임의로 사용해 표절한 예가 숱하게 많았으나 한 번도 문제삼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합니다.웃긴 것은 황석영의 이 '아우를 위하여'도 2010년 '신동아'에서 '아우를 위하여'가 카시와바라 효조의 '먼 길'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이에 대해 황석영은 "해당 일본 작가의 이름도 모른다"며 "이름조차 모르는 일본 작가의 단편소설을 놓고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평생 한국 문학에 걸어온 작가로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머니투데이 2015.6.19 기사).이처럼 해당과 같은 스토리 구성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했던것으로 유사한 점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표절이라 하기는 얼려운 듯 하다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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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시 이야기] 딸에게 배우는 시
시적 대상의 비유는 그것의 본질을 파괴해서는 안된다.하지만 그것이 설명하라는 말은 아니다.얼마 전 여섯 살 된 딸이 이렇게 말합니다.딸 2 : 아빠,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왜 그런 이름인 줄 알아?나 : 봄은 싹이 트는 것을 본다고 봄이고,여름은 열매가 열린다고 여름이고,가을은 곡식을 걷고 밭을 다시 갈이(가을갈이)한다고 가을이고,겨울은 춥고 먹을 것이없어 힘겨울 것이라 겨울이지라고 했더니 딸의 대답이딸 2 : 아니지! 봄은 따뜻해서 봄이고여름은 더우니까 여름이고가을은 낙엽이 떨어지니까 가을이고겨울은 눈이 내려서 겨울이지깜짝 놀라 크게 웃으며 깨닫습니다.'진짜 리얼리티란 우리들이 날마다 접촉하고 있음으로 기계적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사물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운 각도로 보여주는 것이다' 라고 말한 장 콕토(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의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시도 대상의 현실적 의미만을 파다가 외면 당하는 어리석은 길을 가지말고 본질 속에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처음인 것처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시는 늘 살아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에 쓰이는 말도 살아 있어야 합니다. 머리에서 머리가 아닌 심장에서 심장으로 전해지는 말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뒤틀고 꼬아서 감추려고만 했던 탓에 숨이 막혀 죽은 말로 억지스럽게 노래하려 했던 것은 아닌가 고민합니다.여섯 살 꼬맹이 딸에게 저의 어리석음이 드러난 하루였습니다. (이제는 훌쩍 자라서 중학생이 되었답니다.^^)
2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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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영화이야기] 공감하려 하지 않는 삶, 김지영에 대한 따가운 시선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 한 편이 남성과 여성의 양쪽 끝에 서 있는 이들의 논란이 되었던 적이다. 영화 한 편으로 우리 시대의 독립 인격체로의 여성의 문제, 결혼한 여성으로서 출산에 따른 육아와 자기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그러한 모든 문제를 안고 견뎌내고 있는 어머니로서의 문제를 다 언급하려다 보니 세상 모든 악재를 떠안고 사는 '김지영'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이자 그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이에 일각의 여성의 끝에 서 있는 분들의 여성에 대한 차별을 성토하는 의견이 영화를 통해 표출되었고, 영화의 내용이 문제점 위주의 극단적인 면만을 부각시킨 것이 남성의 끝에 서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마찬가지로 남성들만이 의무를 지고 있는 군복무문제와 사회적 압박감에 대한 거친 반발로 신경을 곤두서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쪽이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고 생각된다.)하지만 나는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남성으로서, 한 여성의 남편으로서, 두 딸의 아버지로서 '김지영'이라는 여성에 삶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할만하고 고민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영화에 나왔던 대사 중 생각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몇 가지에 대해 의견을 말해보고자 한다.뭐 애 하나 생긴다고 크게 달라지겠어?... 과연 그럴까? <82년생 김지영> 中 대현과 지영의 대사책임있는 부모가 되는 것은 어렵다. 출산과 함께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부여되는 의무는 아이가 성인이 될 때가지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일이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금전적 부담과 시간적 제한성 정도의 불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겪어보면 실상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는 이들이라면, 육아휴직이나 탄력적 근무제도 등을 통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조금은 수월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지극히 폐쇄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영화 대사에서도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이 괜한 것은 아니다.현실적인 이유로 정년 퇴직을 하는 직장인의 대부분은 남성인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최근은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고, 남성들의 가장의 책임도 커져 힘들지만, 결국은 남성은 사회로 여성은 가정으로 선택하지도 않은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여기서 뭇 남성들은 수입과 경제적 상황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것이지 여성이라서 가정으로 내몰리는 것은 아니라는 반박을 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도 있지만 생각해보자. 그럼 왜 여성의 사회적 활동도 지켜주면서 함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그런 방법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많은 요즘인데도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귀찮음에 외면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아이들 달래며 식사를 준비하는 지영가끔 행복하기도 해요. 또 어떤 때는 어딘가 갇혀 있는 기분이 들어요. <82년생 김지영> 中 지영의 대사나의 아내는 결혼하기 전 유명한 기업의 임원 비서였다가 결혼해서는 이름 있는 회계법인의 임원 비서였다. 업무의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우리가 고대하던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이에 꽤 힘든 과정을 거쳐 비로소 아이가 생기게 되면서 부득이하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아이가 쌍둥이였던 터라 육아와 일을 함께 하기는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어려운 상황이었다.어느덧 아이들은 8살이 되어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자 아내는 많은 고민이 밀려든다고 말했다.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멍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가 지겹고, 마치 쳇바퀴도는 빨래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 같다고.영화 속 '김지영'의 모습도 나의 아내와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고 가정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역할이 정말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선택한 삶이 아닌 선택되어지는 삶에 있어서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 수 도 있을 것이다. 남성들도 다람쥐 쳇바퀴 도는 회사생활이 지겹다고 하겠지만 일을 통해 급여를 받고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아가는 자존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많은 여성들의 경우 작아져만 가는 자신의 자리에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 앉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아이를 바라보며 누군가와 전화를 하지만 어떤 생각으로 대화를 하는 지는 표정이 없다 세탁기에 갇혀 쳇바퀴 도는 빨래나 나는 뭐가 다를까?지영아, 너 하고픈 거 해 <82년생 김지영> 中 미숙의 대사따뜻한 말인 것 같지만 참으로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삶을 오래토록 살아온 '김지영'으로서 잘하는 일을 어느 정도 잘해낼 수 있을 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눈 앞에 들이닥쳐 있는데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거를 다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 고민하지 않은 말이다. 친구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미숙'은 안쓰러운 마음에 던진 말이겠지만, '지영'은 그 말 또한 그 어떤 자신의 상황보다 더 어려운 선택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우리네 삶 속의 '지영'은 반드시 본 상황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영'이 고민해야겠지만 꼭 선택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82년생 김지영>, 이 영화는 단순히 사회로부터 모질게 밀쳐지고 있는 이 시대의 '김지영'에 대해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살아가고 또 태어날 또 다른 '김지영'들과 함께 살아갈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 이러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제안이다. 선택해야 한다.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나는 지금 <82년생 김지영>과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고민 사이에서도 티 없이 맑게 자라고 있는 두 딸과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 딸들은 나중에 자라서 또 다른 '김지영'이 될 것이고, 그 때는 지금 <82년생 김지영>이 고민했던 여러 문제들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로 밝고 건강한 웃음으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김지영'이 될 것이다. 아니 '김지영'이라는 이름조차 모르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부딪치는 이 생각들이 서로를 할퀴는 날카로운 혀가 아닌 따뜻한 가슴이 되어 서로를 안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그냥 울고 싶었고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아마도 <82년생 김지영>의 마음이었을...
2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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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나는 코로나 백신 비접종자입니다.
무지 속 위기의 K-방역수 년 전 연일 다수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진자와 다수의 사망자가 나오면서 방역패스를 적용하는 거리두기 방침이 발효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수도권을 기준으로 6인 초과의 식당 또는 카페에서의 사적모임을 제한하고 6인 모임 시 1명의 비접종자만 포함할 수 있게 되었다 (해당 지침은 수시로 변경되었다). 다행히 혼밥 또는 혼차(tea) 하는 사람들에게는 출입을 허용하였지만 동거가족마저도 비접종자끼리는 PCR 음성확인서가 없이는 식사를 할 수 없게 되었었다.이 방역정책의 목적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모임 등을 통해서 타인에게 감염을 확산시키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백신 비접종자의 경우 PCR 검사를 통해 비감염자임을 확인 후 식당 및 카페, 사우나, 운동시설 등에 출입 허용하고 그 외에는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백신 접종자의 경우에는 방역패스를 적용하여 제제 없이 출입이 가능한데 그 시점에 백신접종자가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는 것인가. 설마 백신접종자는 코로나 감염에 무조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겠지. 정말 그런 생각이었다면 비접종자만이 코로나 감염의 개연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어이없는 무지에서 나온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였던 정부와 그 정부에 자문했던 보건복지부,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의학계의 전문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백신접종자도 비접종자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모두 감염될 수 있다 당시 세계적인 학술지 The Lancet에 백신 접종자가 코로나 감염 시 최대 바이러스양은 백신접종 비접종자와 비슷했다는 내용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그래서 백신 접종자도 자신이 감염 시 타인에게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마스크 착용의 개인 방역이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또 다른 연구 발표에서는 현재 백신이 성공적으로 출시 되었어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의 확산을 막지 못하고 있고 독일의 60세 이상 완전 접종자의 발병률이 연구발표에서 특정한 시기에 되려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하였다. 영국 전역에서도 비접종 감염자(23%)에 노출된 가구 접촉자보다 접종 감염자(25%)에 노출된 가구 접촉자가 조금 더 많았다고 보고되었고 60세 이상의 100명의 코로나 환자를 조사해 본 결과 89.7%가 완전 접종자였고, 3.4%만이 비접종자였다는 충격적인 사실 또한 발표되었다.이것은 코로나 백신이 감염 후 위중증화를 막아주어 사망률을 낮추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호흡기 감염증 특성상 감염 그 자체를 막아주는 것에는 효과적이지 못함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대한민국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환자 급증 상황이 비접종자에 기인한 것인지, 위드코로나 시행으로 갑작스럽게 고삐를 푼 방역 정책의 잘못으로 인해 접종자, 비접종자 할 것 없이 감염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었는지 고민해야 했다. 당시의 코로나 감염 확진 현황을 보아 비접종자의 감염보다는 접종자의 돌파감염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던 것은 대한민국의 백신접종 현황 상 당시의 성인 기준으로 90%이상의 백신접종률이고 전체 81% 이상의 접종완료였기에 확률상 당연 그럴 것이지만, 그 감염 현황을 분석해보면 백신의 효과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원천차단이라고 볼 수 없고, 그 효과 또한 그리 길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래서 정부나 의료계나 백신개발제약사에서도 인정하여 지속적인 부스터샷을 홍보하던 상황이었다.당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의 증가와 함께 60대 이상의 고령층의 위중증화 및 사망자가 늘고 있는 추세였다. 특히 2~3개월이면 효과가 거의 없어진다는 백신 개발사의 말처럼 그 시기가 도래한 고령층이 위험한 것은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고위험군이지만 백신 접종 시 심각한 부작용이 거의 보고되지 않은 고령층의 경우 감염 시 위중증화 및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부스터샷을 귄장하며 강조하는 것에는 이견 없이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것이 중증환자 병상 관리에도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고령층의 경우 기타 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았고, 그로 인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시 기존 질환의 악화로 인한 사망위험이 있었기에 해당 정책 추진 방향은 옳았다고 판단된다. 방역패스? 사실상 백신접종의 강제하지만 당시 백신접종완료자가 전 국민의 80%가 넘는 시점에서 최근 소아청소년들의 확진자가 늘고 있다는 이유로 소아청소년들에게까지 학원 등에 방역패스를 적용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던 것은 소아청소년의 백신접종을 반강제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위드 코로나 시행으로 고삐가 느슨해졌고 교육부가 대책도 없이 전면 등교의 시행을 밀어붙였으므로 학생들이 많이 모여있는 학교 현장에서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진자 증가는 이미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방안 없이 추진 후 다수의 확진자가 발생하니 '모두 다 백신을 맞아야 해'하며 그렇지 않고서는 학원도 갈 수 없다는 어이없는 정책을 편 기승전백신은 정부의 보건정책입안자들의 무지에 의한 판단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근거도 기준도 없었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왜 더 많은 학생들이 모이는 학교는 방역패스 안했던 것인가. 공교육은 괜찮고 사교육은 제한해도 되는 것인가. 백화점은 괜찮은데 백화점 내 푸드코트는 안되는 것인가.0세~19세까지의 소아청소년들 중 그 당시 (소아청소년 방역정책 발표) 까지 보고된 사망자는 9세 미만의 기저질환을 가진 3명이고 대부분은 무증상에 경증이므로 감염의 위험성이 부작용의 위험성을 상회하지 않아 백신접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데도 방역당국과 그 자문의료진들은 최근 확진자가 늘고 있으니 반드시 접종할 것을 권장한다며 학원 등에 사실상 반강제적인 방역패스 적용을 예고하였었다. 의료계에서 조차 본 사안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하고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백신 접종 여부가 중세시대 부패한 교회에서 판매했던 면죄부처럼 권력화방역패스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일정 시설에 출입을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백신 접종 유무가 아닌 PCR 검사(또는 신속진단검사)를 통한 음성확인서 만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당시 국가가 개인의 선택을 강제한다는 이유로 방역패스는 위헌이라는 소원도 제기되었었다. 이에 방역당국이 주도하였다고도 볼 수 있는 다수의 백신접종자들의 집단적 여론이 비접종자를 향해 이기적이라는 비난의 손가락질이 행해지도록 부추겼다. 이것은 방역당국이 공공연하게 말하는 백신을 접종하면 코로나바이러스데 대한 감염률을 낮출 수 있다는 절대적인 오류와 비접종자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근원이라는 근거 없는 누명에 기인하여 다수가 소수의 집단을 몰아세워 차별하였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신접종자들도 감염되고 있었는데 당시 소아청소년 확진자 증가의 실정을 비접종자탓으로만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백신접종이 마치 코로나 감염으로부터의 면죄부인양 들이밀면서 마치 과거 중세사회 부패한 교회의 면죄부 판매처럼 원죄의 공포를 이용해서 집단의 여론으로 강제하는 폭력이랑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대한민국의 근거 없는 방역패스는 국가가, 집단이, 소수에게 자행하는 폭력이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았다. 공포를 이용하여 잘못 각인된 집단의 여론으로 아무런 근거도 없고 고민도 없고 원칙도 없는 방역정책을 펼쳤던 것이다. 정부가 자랑하던 K-방역의 허구와 실패를 국민과 비접종자의 탓으로 돌리며 백신접종만이 정답인양 노래했다. K 방역을 칭송하는 외국 언론의 말에 도취되어 거대 제약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며 정부의 자기만족에만 골몰했던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당시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보다 낮은 백신접종률과 강제되지 않는 방역정책에도 낮은 감염률과 사망자 현황을 보이고 있었다. 계절독감처럼 무증상과 경증은 단순하게 넘기고 격리조치도 없으며 3~7일 정도 휴가 및 휴교를 권하였다. 우리나라처럼 학교에서 감염자가 나왔다고 같은 층 전체가 PCR 검사를 받는 공포를 자행하지 않고 증상이 있는 환자만 집중치료하였다. 일본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대한민국보다 더 심각한 혼란을 겪었었는지 떠올려보면 실소를 참을 수 없다. 일본은 거리두기나 방역 등 권고는 했었으나 강제하지 않았고 무증상이나 경증은 검사를 권하지도 않았고 원할 시 비용을 부담하고 확진이 나온다 하더라도 휴식 및 감기약 수준의 처방이 전부이므로 검사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내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 100명 수준의 감염자에 사망자는 1~2명 발생할 뿐 전혀 없는 날도 있었다. 한 때 혼란스러웠던 병상 회전 문제도 이러한 정책으로 대부분 해결되었었다. 오미크론 변이 발생에도 일본 총리가 직접 나와 국민들의 불안을 달랬으며 우리처럼 공포를 조성하며 통제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를 믿고 방역지침을 잘 따라 달라는 발표가 인상적이었다.어떤 이는 일본에서는 PCR 검사를 안해서 확진자가 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또 어떤 이는 대한민국에서 진단키트 구매하지 않아 일본 내 진단기기로는 델타변이를 검출하지 못해서라고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정말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고령자가 많은 일본에서 위중증 환자나 사망자가 거의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에 일본인들 60%가 가진 특이한 백혈구 형태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면역력이 강한게 아닌가 하는 신문기사가 보도되었지만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1만명이 넘는 확진자와 병상 부족으로 인한 대처 실패로 많은 사망자가 나왔었고 혼란이 있었기에 단순히 이러한 이유만이라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 후 경증과 무증상은 스스로 이겨내도록 한 것이 자연면역을 상승시켰고, 중증환자 관리 중심으로 방역정책을 운영하면서 사망자도 현저히 감소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마스크 착용이나 백신 접종을 권유하면서도 어느 것 하나도 강제하지 않는 스웨덴에서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여 확진자수나 사망자수가 인구 대비로 따져도 현저하게 적은 것을 보면 어쩌면 이것이 정말 당시 상황에서 맞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 방역당국에서도 일본의 사례와 대만, 스웨덴 등 국가의 방역 정책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통제를 위한 근거 없는 소수에 대한 국가와 다수의 폭력을 반대한다 나는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다. 혈액암의 가족력이 있고, 가까운 사람이 극심한 부작용으로 고생한 10%의 비접종자이자 백신접종자들이 말하는 이기주의자이다. 나의 선택을 따라주었던 나의 가족들도 모두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다. 어쩌면 안전성이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현재의 코로나 백신에 대한 두려움이 남들보다 강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드물지만 코로나 백신 접종 후 급성 백혈병 및 심혈관 관련 부작용, 혈전 관련 부작용 등 다수의 부작용에 걱정이 앞서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지난 코로나19 펜데믹 기간 동안 방역당국의 정책을 따르며 누구보다도 개인방역을 철저히 하며 지냈다.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은 백신접종자였고 그들은 당시 백신접종을 이유로 자유롭게 생활하였었다. 그들은 대부분 나보다 먼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진을 받았다. 그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 모두 PCR 검사를 해야 했지만 백신을 접종한 다수의 동지들은 그들이 감염되었다 하더라도 별 비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비접종자인 내가 되었을 때는 달랐다. 왜냐하면 백신접종자는 접종을 함으로써 감염이라는 후천적 원죄를 면죄 받았고, 비접종자는 백신으로 그 죄사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날 코로나 백신은 어이없게도 그 옛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되고, 그로 인해 이 시기의 종교가 되어버린 순간이었다.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은 종교에도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자신들이 선택한 종교 안에서 위안을 가진다. 마찬가지로 코로나 백신의 접종에 대한 것도 개인의 선택의 자유여야만 했다. 백신을 접종함으로써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위안을 받을 수는 있다. 그 받은 위안을 타인에게 전도하려 할 수는 있지만 강요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고 해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개인의 선택에 의한 제도적 불편은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불편이 방역패스 같은 차별의 형태라면 나는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정책을 지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직장에서도 백신접종 여부를 근무 조건에 넣어서 채용에 있어 차별하였던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근무 중인 비접종자에게 의료계나 교육계의 필수 접종 직군(사실 이들에게도 코로나 백신 접종을 강요해서는 안됨)이 아님에도 백신 접종을 강요하며 실직의 공포를 이용하여 어쩔 수 없이 접종하게끔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이미 유럽의 국가들과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의료인의 백신 접종 강요도 위법으로 판명되었고 많은 주요 국가에서도 방역패스 같은 것이 위법(헌)이라는 결론을 내린 곳도 많다. 그럼에도 이처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여부 확인에 근거도 없는 방역패스 정책은 모든 영역의 면죄부처럼 변질되었던 것이다. 국민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드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폭력이다. 다수가 선택했다는 이유로 자행되는 비접종자에 대한 차별이다.다시 한번 대한민국에 말하고 싶다. K-방역은 실패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진자의 증가 및 사망자의 증가를 국민이 아닌 방역당국의 실정에서 냉정하게 찾아야 한다. 코로나19 펜데믹이라는 이유를 들어 대한민국 국민을 백신 접종자와 백신 비접종자로 나누는 방역정책은 근거가 없는 코미디였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어떤 이는 이러한 펜데믹이 수 년 내에 또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그리고 그 속에 속해 있는 우리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2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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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 전문가
맑은글터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