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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가 왜 미국땅이 된걸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알래스카는 원주민 언어로 ‘위대한 땅’이란 뜻입니다. 1860년대에 러시아는 알래스카 영유권을 지탱하기 위해 소수의 러시아인은 강제로 정착시켰습니다. 러시아는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의 세 대륙에 광대한 영토를 보유했지만, 북아메리카의 알래스카에는 사실상 통치력이 미치지 않았고 인근에는 적대국인 영국령 캐나다가 있었고, 그 남쪽에는 미국이 고속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크림전쟁 직후에 패전에 따른 재정 위기에 빠져 있었고, 농민반란 등이 있어 러시아는 당장에 돈이 급했기에 통치하기 어려운 알래스카를 경쟁입찰에 붙여 팔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 매각 협상 대상으로 영국과 미국을 선택했던 것입니다.영국도 마찬가지로 전쟁 후유증과 재정악화로 무리한 투자라고 판단하여 거절하였습니다.러시아는 방향을 바꿔 미국에 제의했지만 남북전쟁 이후 전쟁 복구 사업에 나라의 전 재원을 투입할 상황이어서 알래스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추가로 러시아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리히텐슈타인 공작에게 제의를 했지만 이도 거절 당했습니다. 알래스카 매각이 실패하고 내부에서는 그냥 보유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콘스탄틴 대공이 힘이 커지고 있는 미국이 북미 대륙 전체에 욕심을 보이고 있는데 러시아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알래스카까지 빼앗는다면 돌려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편지를 외무대신에게 보냈고, 이에 알렉산드르 2세는 그의 말에 동의하고 해군장관도 동조하여 그냥 알래스카에서 철수하자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하지만 주미 대사였던 에두아르트 스테클은 그냥 철수하는 것보다는 몇 푼이라도 받고 팔자는 의견을 다시 제시했고 결국 매각으로 방향이 재정립되었습니다. 주미 대사인 스테클은 미 고위층과 접촉하여 매각 금액을 협상하였고, 미국은 사기 싫어 그냥 500만 달러를 넘으면 안된다고 어이없는 가격을 제시하였습니다. 협상 하는 과정에 1865년 앤드류 존슨이 대통령이 되고, 윌리엄 슈어드가 국무장관이 되면서 슈어드 국무장관이 스테클 주미 대사와 재협상을 하였고, 1867년 3월 30일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 매각 협상이 타결됩니다. 최종 협상안은 미국 의회를 통과했으며, 1867년 10월 18일 알래스카는 최종적으로 미국령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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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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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진실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역사 속의 한 인물을 평가하는 것은 한가지 잣대로만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봅니다.각 인물마다 공&과가 있기 마련이고 그 인물을 평가하는 사람들 각각의 판단에 있어 애국자가 되기도 하고 매국노가 되기도 합니다.이승만이라는 인물은 더더욱 그러한 여러 시각에서 존경하기 힘들기도 하고 존경할 수도 있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인물이라고 봅니다.먼저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정말 존경하기 힘든 인물이라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1. 자신의 출세와 대한민국을 통치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독립운동을 하였다는 평가가 있음 (미CIA 문서)- 독립운동 하던 당시 한인사회 모금액으로 부동산을 구입하고, 그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의 상환을 국민회에 넘겼다. 그리고 그 대출금의 사용 내역을 밝히지 않았다고 하나 이것은 하와이 부동산 거래 기록 등을 볼 때 외히려 학교 건립 등에 재정을 보태었지 유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음- CIA 문서 서두에 애국자라고 평가하고 있고, 문서의 전반적인 내용은 이승만을 반공주의자이자 애국자로 평가2. 한일합방의 단초를 마련했던 가쓰라-테프트 조약을 추진하게 한 미국인 스티븐슨을 민족의 원수로 저격 살해한 독립운동가 장인환 전명운의 변호를 큰 돈을 요구하면서, 결국에 살인자라며 변호를 거부했다는 설3. 일본의 이즈모함 폭파 공작을 계획한 독립운동가 박용만을 이승만이 직접 고발했다.그리고 하와이 법원에서 이를 증언4. 임시정부 대통령의 신분으로 미국에서 방탕하게 살다가 부도덕한 성관계를 목적으로 주 경계를 넘으면 불법이므로 기소되었다?- 둘은 아버지와 딸과 같은 관계고 실제로 수양딸로 친권을 포기하는 여자측 부모의 친필 서류도 있다하니 확인이 필요하고, 수사는 받았으나 내용이 신빙성 없다는 판단으로 기소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어 확인 필요.5. 제주 4. 3, 여수순천, 보도연맹사건에서 민간인 학살에 국가 원수로서 분명 책임이 있음6. 사사오입이라는 궤변으로 독재 장기 집권하다가 결국 4.19 의거를 통해 실각. 독재의 책임이 있음.이승만이 대통령으로서 존경받을 수 있는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1. 농지개혁을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만들었다 (유상매입, 유상배분)2, 이승만 Line 설정을 통해 처음으로 독도를 우리의 영토로 명확하게 규정3. 6년 교육 의무교육제 신설로 문맹률 감소에 기여4. 한미상호방호 조약 체결로 인한 미국이라는 방어막 도입. 북한과의 전쟁 억제 효과최근 건국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승만에 대해 재평가 한다고 하는데 그동안 워낙 부정적인 평가 만을 받아오다 보니 긍정적인 측면에서 그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쪽에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만 분명 공이 있는 대통령이지만, 과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이었기에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하지만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했습니다.어떤 독립운동가들은 분단 이후 되려 6.25 전쟁 때 김일성과 함께 대한민국을 침탈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을 하기 전 어떤 이유가 되었든 간에 살인을 저질러 도망자 신분이었던 이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어두운 면이 있었을 지 모르나 우리는 그들을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로는 박수를 보냅니다.마찬가지로 이승만이 그의 권력욕이든 아니든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초기 정부 확립에 많은 기여를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욕심이 과했기에 독재로 장기 집권을 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다 결국은 쫓겨나게 된 것이죠. 이후 박정희의 군사 정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많은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여 박수 받았으나, 자유를 억압하고 마찬가지로 독재 정권을 이어가며, 결국에 자신의 수하에게 암살 당하게 되었고, 또다른 군사 독재 정권을 탄생시키는 시발점이 되었기에 후대에는 그의 과가 더욱 비판 받게 된 것입니다.그들은 야누스입니다. 어쩌면 정치라는 것이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죠. 어떤 것이 진정한 그들의 얼굴인지는 지나온 역사를 보며 각자가 판단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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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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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주력 병력은 무엇이었습니까?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구려 부흥 운동을 앞장섰던 대중상, 대조영의 고구려 유민세력과 걸사비우를 중심으로 한 흑수말갈족이 주를 이루었다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고구려 멸망 후 저항하다 함께 동쪽으로 망명하여 대중상을 후고구려 왕으로 세우고 이후 대조영이 이어받은 후 진국이라 칭하고 이후 당에서 정식으로 발해군왕이라 책봉하며 외교적으로 알려지자 진국이라 해면서도 대외적으로 발해 국호를 사용하였습니다.대진국 발해의 지도층도 고구려유민, 흑수말갈이 요직을 차지한 것으로 보아 병력의 구성도 비슷했을 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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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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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명절선물에는 식용유를 주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명절에 식용유를 많이 선물하는 이유는 보통의 차례상을 차릴 때 준비하는 음식 중 산적, 각 종 전, 나물류 중 볶는 나물, 생선 등을 조리할 때 기름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살림에 보탬이 되는 식재료를 선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고기나 굴비, 과일 등을 많이 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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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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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세배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세배 문화는 매년 초 한해의 무사와 풍요를 빌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유교 문화가 들어오면서 그러한 제천의식에 대한 개념이 사람으로 옮아가 효의 개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에 처음에는 세배라는 것이 마을 또는 집안의 연세가 많으신 어른들이 한해를 무사히 보내고, 맞이 한 한해에도 무병장수하시기를 비는 취지에서 문안인사로 드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집에 방문한 손님에 대해서 식사 또는 다과를 대접하였습니다. 세뱃돈에 대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에서 송나라 때 새해에 결혼을 하지 않은 자녀에게 홍바오라고 하여 붉은 봉투에 돈을 넣어 주며 덕담을 하는 궁시파차이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일본으로 전해져서 오도시다마라는 것이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 전해져 세뱃돈이 되었다는 설이 있고, 압세전이라고 하여 '세'는 잡스러운 귀신을 뜻하는데 잡스러운 귀신을 누르는 것으로 새해 아이들에게 건내 준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여인들은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기에 집안의 노비를 시켜, 다른 일가 친척에게 새해에 안부를 묻게 하였고, 안부인사를 받은 집에서 그 하인에게 수고비를 주었는데 그것을 문안비라고 하였고, 이것이 세뱃돈으로 확산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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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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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해외와 무역을 많이 했던 시절은 고려시대라고 들었는데, 고려시대에는 어떤 나라와 무역을 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시대에는 육로 및 해상을 통한 국제무역이 활발했습니다. 특히 중국의 송나라, 거란, 여진과 아라비아, 일본과의 무역이 성행하였습니다. 송나라, 일본, 아랍국은 해상무역을 주로 하였고, 거란과 여진은 육로무역을 주로 하였습니다.해상무역은 대부분 국제무역항이 된 벽란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송나라, 아라비아와의 무역에서는 주로 수출하는 품목은 금, 은, 나전칠기, 종이, 인삼 등이었고, 수입하는 품목은 비단, 향료, 서적, 수은 등이었습니다. 거란과 여진에는 주로 곡식, 철제, 구리, 농기구 등을 수출하였고, 모피, 말, 은을 수입하였습니다.공무역, 사무역 모두 성행하였으나 가장 중심이 된 것은 공무역이었습니다. 각국의 사신을 통해서 공식적인 루트로 들여왔습니다. 거래의 형태는 대부분이 물물교환의 형태였고, 간혹 중국화폐 등이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공무역의 경우 조정의 관리들 중 해당국의 말과 글에 능통한 이가 사신으로 갔었기에 당연히 외교관으로서 소통이 가능했던 것으로 판단되고, 사무역의 경우 여러 나라를 오가면서 실전에서 말을 배운 이들이 더러 있어 통역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이태원의 노점상 할머니들도 거래하는 영어는 아주 능숙하게 잘 하시는 것만 봐도 충분히 가능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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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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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누구라도 책을 출판해볼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연히 출판 가능합니다. 요즘은 개인출판 플랫폼도 많으니 어렵지 않게 출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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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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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족하고 거란족하고 같은민족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다 혼혈 민족입니다. 거란족은 동호계 선비, 흉노에서 분화되어 나온 것으로 4세기경에 독립된 하나의 집단이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퉁구스와 몽골계의 혼혈족입니다. 한족은 황하 중하류인 화북 지방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현재 중국과 대만 인구의 대부분 차지 합니다.화하족이 원류이며 자신들의 기원이 한나라 때부터라고 말하며, 그들은 선비족과 몽골계의 혼혈족입니다.한줄기 씩은 다 섞여있습니다. 과거 정치적으로는 다른 국가이고 말도 달랐으므로 다른 민족이라 볼 수 있으나 과거 지배, 동화, 분화된 것으로 혼혈되어 형성된 민족이므로 일부는 동족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확실히 다른 것은 한좈은 농경 중심이고 거란족은 유목 중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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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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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축구경기를 보다보니까,, 마직막에 넣은 골을 극장골 이라고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축구경기에서 극장골이란 영어로 Last gasp goal 이라고 합니다. 그 의미는 경기의 막바지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승부를 뒤집거나 위기를 넘길 수 있게 하는 극적인 골이라는 것입니다. gasp는 '숨을 헐떡거리다', '숨 쉬기 어려운 상태에서 쉬는 짧은 호흡'이라는 뜻인데, 뜻 그대로만 직역하면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힘든 마지막에 나온 골'입니다. 비슷한 뜻으로 Last minute goal을 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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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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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장군은 왜 위화도에서 회군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 말기 최영의 권유로 왕이 요동정벌 추진하였습니다. 그 배경으로는 당시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는 국가로 과거 고구려 땅을 수복하고자 하는 염원은 계속 있어왔던 터라 명분이 있었고, 원나라가 망하고 난 후 부강해진 명나라가 원나라 때 쌍성총관부가 있던 철령 이북의 땅에 철령위를 설치하겠다며 땅을 내놓으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였고, 이에 친명 세력이었던 이인임 세력을 몰아내었고, 명나라의 홍무 연호를 폐기하고 북진을 준비하자는 최영의 의견에 우왕이 승인하게 됩니다. 이성계는 조민수와 함께 명으로 진군하면서 위화도 인근에서 압록강 물이 불어나 14일을 진군하지 못하고 머물렀습니다. 이에 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옳지 않다/여름에 전쟁하는 것은 옳지 않다/모든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왜적의 침입을 방어할 수 없다/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이므로 활의 아교가 떨어져 무기에 문제가 생기고 전염병의 우려가 있다"라는 4가지 불가론을 주장하며 반대하였으나 우왕과 최영은 되려 이성계에게 하루 빨리 강을 건너라고 명을 내립니다. 당시 정치적인 상황으로는 아마도 전쟁을 통해 이성계와 정도전 세력의 역모를 미연에 방지하고, 어쩌면 전장에서 그를 도모하고자 선봉장으로 보냈을 가능성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성계의 요동정벌 반대의 이유가 언급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안위 때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여러 상황으로 보았을 때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자신과 가족의 안위이지 않을까 합니다. 실제로 자신이 요동으로 보내지면서, 자신의 가족들은 볼모로 잡혀있었으니까요. 결국 이성계는 조민수와 손을 잡고 위화도에서 회군하기로 결정을 하고 우왕과 최영은 서경에서 개경으로 옮겨 반격을 준비하였으나, 이방원의 책략으로 가족도 탈출하여 걸림돌이 없었던 이성계는 신진군부세력과 함께 쿠테타에 성공하고 우왕을 폐위시키고 우왕의 아들인 창왕을 이색과 조민수의 추천으로 옹립하고 자신은 좌시중, 조민수는 우시중이 됩니다. 이후 조민수는 모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이성계를 도모하고자 하였으나 되려 반격 당해 유배되고 창왕을 고려시대 요승이었던 신돈의 핏줄이라는 이유로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옹립하게 됩니다. 이후 공양왕 또한 폐위시키고 자신이 고려의 왕위를 이어받고, 이씨 왕조로 새롭게 하기 위해 국호를 조선이라 칭하며 개국하게 됩니다. 조선은 처음 명에 인정받지 못했으나 이후 명과의 관계가 개선되며 인정받게 됩니다.이 모든 과정을 볼 때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정말 나라를 아끼는 마음에서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하였던 것인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안위와 정도전과 공모한 쿠테타의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하고 명분을 얻어 추진한 것인가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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