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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먹는다 말이 왜 유래되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떡국은 긴 가래떡을 편으로 썰어 넣고 하얗게 백탕으로 끓어 온갖 고명을 얹어 먹는 우리의 전통음식입니다. 긴 가래떡은 무병 장수를 뜻합니다. 원래 떡국은 백탕 또는 병탕이라고 불리우며, 정조차례와 세찬에 없어서는 안될 음식으로 새해나 손님이 왔을 때 대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매년 초 설날에 떡국을 먹다보니 자연스럽게 한 살을 더 먹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다 보니 떡국과 나이가 매칭되었던 것으로 유추됩니다. 그래서 예전에도 "병탕 몇 사발이나 먹었느냐?"라며 나이를 묻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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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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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의 사위는 어떤 지위와 권한을 가졌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왕의 사위인 부마는 조선 초기에는 중매 등을 통해 혼인을 하였으나, 공주와 달리 옹주의 경우 후궁의 자제라는 이유로 명망 높은 양반가에서는 고사하는 경우가 발생하여 조선 후기부터는 간택령에 의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혼사를 거절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이었습니다. 부마는 공주와 혼인한 경우 정 1품, 옹주와 혼인한 경우 정 2품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 따른 정부의 재정적 지원(집, 노비, 녹봉(월급))과 권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마는 관직에 나갈 수 없었으며, 첩을 둘 수 없었고, 공주나 옹주와 사별한 후에도 부마의 지위는 유지되었으나 재혼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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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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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화랑은 처음누가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라시대 화랑의 공식 제도적 설치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 4권 진흥왕 37년(576)에 나옵니다.그러나 삼국사기에는 이보다 앞선 시기에 화랑 사다함에 대한 행적이 기록되어 있어 그 기원을 원화(源花)가 만들어진 때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집답이었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 기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에 조의선인라는 집답이 있었고, 백제에는 무절 혹은 수사, 신라에는 화랑이 존재하였듯이 과거부터 종교 및 사상과 연계되어 유사 시 국가를 위해 나서는 조직이 있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직들은 어린 시절부터 애국심을 함양하고 무예와 학문을 익히는 일종의 교육기관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것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내려오던 전통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는데 배달국에서부터 이어저 내려온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배달국을 열었던 문명집단으로 핵랑이라는 집단이 존재하는데, 중국 본토 쪽에 영토를 두고 있다가 동방의 개척에 나서게 되는데 삼신산이었던 천산, 삼위산, 금악산에서 태백산(백두산)으로 옮겨 다시 개천을 하였는데, 이 때 성직자이자 국가상비군이자 인재를 양성하는 삼랑이라는 관직을 만든 것에서 그 뿌리가 있다고 합니다. 이후 단군조선의 국자랑,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절 혹은 수사, 신라의 화랑, 그리고 고려의 재가화상(국선, 선랑)으로 각 국마다 발전되었다고 보는 설입니다. 삼성기라고 하는 사서에 그 시작이 나와있고, 태백일사라고 하는 사서에 랑은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이라고 나와 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당시는 정교 분리가 되어있지 않은 시대였고, 충분히 가능성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교단사학계에서는 삼성기, 태백일사 등 소위 묶어서 환단고기라고 칭해지는 사서를 위서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여러 내용을 보고 주변국의 사서와 비교해보았을 때 원서가 존재하지 않지만 그 내용은 진서라는 의견들이 최근 연구에 의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말씀주신 화랑의 기원은 이러한 고대부터의 낭가사상이 전해내려오고 국가가 독립적으로 분리되면서 각각의 이름으로 불리며, 발전해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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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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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선동열 선수의 주무기는 뭐였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선동렬의 주무기는 시속 150km가 넘는 강속구(투심 패스트볼)와 7시에서 8시 방향으로 휘어나가는 슬라이더였습니다. 9회를 던질 수 있는 완투 능력과 낮은 방어율입니다. 그리고 선동렬은 투수로서도 일본 무대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았는데, 이처럼 선동렬이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빠른 공과 슬라이더를 가진 것과 무릎 언저리에서 낮게 제구되어 형성 구위가 위력적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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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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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뭔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 책은 2002년에 출간된 책으로 남성과 여성은 언어와 사고의 차이가 있어 그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이성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자기계발 교양서적입니다. 작가 존 그레이는 이혼 위기에 처한 2만5천여 쌍의 부부를 위한 세미나의 결과물들을 묶어서 부부 관계, 이성 관계의 바이블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이슈가 되었던 책입니다. 남자는 화성인, 여자는 금성인이라는 근원적 차이를 제목에서부터 제시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학습하여 나의 관점이 아닌 상대방의 관점에서 말과 행동을 이해하면 다툼이 줄어들 것이라고 해법을 제시하였습니다. 남성의 사고로 여성을 이해하려 하거나 여성의 사고로 남성을 이해하려고 하면 서로에게 벽이 생기고 결국에는 파탄에 이르고 만다는 것이죠 ㅎㅎ. 최근 본 책이 100만 부 판매 기념으로 리커버 에디션이 출간되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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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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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어느 나라 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샤워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아침, 저녁으로는 하고, 중간 중간 운동하시는 분들은 추가적으로 더 하기도 하니까요.인터넷에 개인위생에 가장 민감한 나라들로 샤워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 순위가 있어서 가져와 봅니다. 1위 일본, 2위 한국, 3위 스웨덴, 4위 독일, 5위 노르웨이, 6위 네덜란드, 7위 덴마크, 8위 프랑스, 9위 캐나다, 10위 스위스[출처] 샤워를 많이 하는 나라 TOP 10 (tistory.com) 어떤 통계인지는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아서 상기 출처를 첨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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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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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는데, 왜 르네상스라는 말은 프랑스어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탈리아는 고대 로마제국의 발상지였습니다. 이탈리아는 유럽 국가 중에서도 가장 번영하고 부유한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예술, 역사적 가치 등을 알아보는 안목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천한 출신의 권력가, 지배자들은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 학문과 문화에 대한 후원으로 부족한 역량을 보상, 보충하기도 하는 정치적 상황도 있었습니다.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니노플이 오스만제국에 함락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멸망한 비잔티움 제국의 많은 고전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넘어오게 되는 시대적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될 수 있었던 여러가지 상황이 마련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이탈리아어로 Il Rinascimento(Rinasimento)라는 어원을 가진 르네상스라는 말은, 프랑스 역사가인 미슐레가 프랑스어인 Renaissance라는 말로 확립시켰으며 이것이 영어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그 개념을 정립시킨 건 프랑스 역사가 미슐레이므로 이후 평가한 학자와 학계에 의해 르네상스라는 명칭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Re는 '다시'라는 뜻이고, nasissance는 '탄생, 태어남'의 뜻으로 문예부흥 운동으로 신의 중심 문화에서 인간 중심의 문화로의 변화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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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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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최초로 전기를 사용한 시기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온 시기는 1887년 3월 6일입니다. 장소는 경복궁 내 건청궁입니다. 이것은 에디슨이 백열전등을 만들고 8년도 채 안 되어 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온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던 전기가 10년도 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중국과 일본에도 들어가기 전입니다. 궁 내에 향원정이라는 연못에 발전기를 세웠는데 당시로서 동양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의 발전기로 무려 16촉광으로 백열등을 750개 켤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합니다. 당시 사용한 발전기의 조립, 설치, 전등의 가설은 미국의 윌리엄 멕케이라는 전기기사가 했습니다. 석탄을 연료로 하여 향원정 연못의 물을 끌어 발전기를 돌렸다고 합니다. 당시 기술이 완전하지 않았던 탓에 자주 정전이 되어 ‘건달불’ 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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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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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고싶어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종은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환구단에서 황제즉위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고종부터는 황제라고 칭합니다. 1895년 고종의 부인인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서 살해됩니다. 명성황후가 조선에 암적인 존재였지만, 우리 내부가 아닌 일본에 의해서 살해된 것은 치욕적이면서도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이에 고종은 다른 궁으로 피신할 수도 없고, 형제관계에서 군신관계까지 발전했던 청나라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이미 1894~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은 조선의 일에 간섭할 수도 일본에 대항할 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종은 러시아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러시아 공관인 '아관'으로 몸을 숨기게 되어 이 사건은 '아관파천'이라고 합니다. 이후 1년 정도 있다가 덕수궁을 증축한 후 돌아가게 됩니다. 돌아와보니 이제 청도 조선에 관여하지 않고, 눈치 볼 일도 없다고 판단하여 1897년 10월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대한제국이라고 국호를 바꾸게 된 것입니다. 광무라고 하는 연호도 사용했습니다. 이후 국제사회에서 대한제국을 주권국가로 확립하기 위해 군사제도 개편을 비롯한 제도를 개편하고, 근대화를 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당시의 연호를 빌어 <광무개혁>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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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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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때 용골대라는 인물은 실존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용골대는 청나라 개국 당시 군인이자 정치인으로서 병자호란으로 조선을 침공했을 때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에게 항복을 받아낸 인물입니다. 만주족의 타타라 씨족의 일원이고, 청나라 창업군주인 누르하치와 차기 군주였던 홍타이지에게도 신임을 받던 인물입니다. 우리에게는 적이었으니 좋지 않게 평가되고 있죠. 하지만 용골대는 청의 입장만을 고수하지 않고 조선을 형제의 나라로 인정하고 외교적으로 풀어가려고 했기에 청에서 요구한 군신관계를 맺기는 하되 좋은 조건을 조선에도 제시하여 인조는 감사의 뜻으로 용골대에게 은 2,000냥을 하사했고, 용골대를 그것을 그대로 자신의 왕에게 바칠 정도로 청렴했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사실 청나라 이전에 세워진 금나라는 쇠 금 金의 한자를 쓰는 나라였는데 이것은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세운 나라라고 하여 당시 중국 쪽에서는 신라 왕족의 후손이 세웠다 하여 또다른 신라로 인정할 정도라고 하니 우리와 동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나라도 이후 후금과 몽골 등을 통합하였고, 여진족이라고 하는 여진은 고려, 고구려의 여, 발해의 정식 국호인 진국의 진의 사람들이라고 하여 여진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와 한민족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청나라는 처음에는 우리와 형제관계이기를 원했고, 명을 제압할 정도로 강력해졌을 때 군신관계로 바뀌기는 했어도 과거 다른 중국의 국가들과는 달리 조선에 대한 예우를 갖췄던 것으로 보아 이렇듯 같은 민족이었다는 역사가 있어서 그랬지 않나 추측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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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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