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양반과 평민은 토지를 소유하는 방법이 어떻게 달랐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는 거의 다 양반들의 소유 였고 퍙민들이 토지 소유주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양반들은 국가로부터 과전, 녹봉등을 받기 때문 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지주였으며, 주수입원은 토지와 노비였습니다. 특히, 양반 소유의 토지는 비옥한 토지가 많았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규모가 커서 농장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는데 양반은 자기 소유의 토지를 노비에게 직접 경작시켰으나 토지의 규모가 커서 노비의 노동력만으로 경작할 수 없으면 그 주변 농민(평민) 에게 생산량을 절반씩 나누어 가지는 병작 반수의 형태로 소작을 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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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물류나 택배 관련 회사명에 로지스(틱)를 많이 사용하는데..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로지스틱스 (LOGISTICS) 라는 단어는 물류관리+자재관리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원래는 logistique 라는 프랑스 언어로 군사적 의미의 물자 조달이며 이것이 미국의 군사 용어로 logistics (병참)사용 하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거의 배송, 보관, 관리 등의 의미를 가지는 물류와 로지 스틱스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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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의 역사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 전력 공사는 1961년 7월 국영 기업으로 발족 하지만 그 기원은 그보다 60년전인 대한 제국 시기인 1898년 1월(광무 2년)에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된 것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1978년 04월에 고리원자력 1호기 준공 (58만 7000 kW) 1978년 12월에 최대수요전력 511만 8000 kW 기록. 1979년 10월에 대한민국 최초 해저케이블 전화공사 준공 (전남 신안도서지역 23개 섬 1만 6000여 호) 등의 역사를 거치며 현재의 한국 전력으로 성장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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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고유의 브랜드 역사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상품 등록을 한 브랜드는 바로 1910년 일본상표법에 따라 '부채표' 상표를 국내 최초로 등록한 한국 최고(最古) 브랜드이자 국내 최초 상표등록 제품 부채표 활명수라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브랜드라는 것이 없었고 한국의 브랜드는 일제 강점기에 즈음 하여 태동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한국 침략과 일본의 통치는 한국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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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불기2567년 부처님오신날이라고하던데 불기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불기 2567년이라 함은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 2567년이 흘렀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탄생이나 열반 연도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디에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지금의 불기는 부처님 입멸 후 100년째 되는 해에 인도 마우리아왕조에서 아소카 왕이 즉위했다는 설을 토대로 계산해 입멸 연도를 산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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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으로 보면 1인자를 제외한 2인자가 기억되는 일이 드문데, 1인자 만큼 기억되는 2인로 누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가들은 현대 중국 역사에서 뽑은 가장 완벽한 2인자 중에 하나로 중국 공산당 모택동 시대의 2인자 주은래를 선택 했다고 합니다. 그는 무려 27년간 총리로 재직하며 공산 혁명, 문화 혁명 등 생사를 건 권력 투쟁이 빈번했던 격동의 시대에 단 한 번의 흔들림 없이 2인자를 자리를 지킨 신화적 존재 입니다. 업무 태도, 온화하고 섬세하며 유연한 성품과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많았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유소기, 임표, 등소평 등 많은 이들이 정치적 수난을 겪었지만 주은래만은 외교부장과 총리로 모택동을 보좌하며 오늘의 중국 건설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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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되면 언어적으로 생기는 변화는 어떤것들이 있을수 있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일이 되면 우선 표준어를 만들어야 겠지요. 북한말과 남한말들 중에 공통 되는 것들과 차이가 나는 것들을 같이 통일해서 정리 하는 작업이 이루어 질 것이고 평영 말과 서울 말중에 어떤 말을 표준어로 할 것인지를 정하고 표준어 사전도 다시 만들어야 할 것 입니다. 요즘은 워낙 인터넷이랑 통신 기술이 잘 되어 있어서 서울말이 표준어로 정해 져도 황해도나 함경도 지역에서 서울말을 쓰는 것은 몇 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제주도에서 더이상 사투리를 많이 안 쓰고 서울 표준어를 쓰는 것과 동일한 효과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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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이자겸의 난에 대한 질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126년(인종 4년) 왕실의 외척이었던 이자겸이 벌인 난인데 이자겸은 예종과 인종에게 자신의 딸을 왕후로 들이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이러한 막강한 권력을 누르고자 인종이 먼저 측근 세력을 동원하여 이자겸을 제거하려 했고 이자겸은 척준경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난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자겸은 왕궁을 침범하여 왕을 유폐시키고 정치를 독단하였습니다. 인종은 최사전의 계략을 수용하여 사태를 수습하고 이자겸을 유배 보냄으로써 인주이씨의 발호는 막을 내렸지만 정치기강은 더욱 문란해져 귀족층의 분열과 대립이 표면화되고 귀족사회 자체가 동요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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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신분중 하나인 중인은 어떤 신분이라고 할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인들도 과거 시험인 잡과를 볼 수는 있었습니다. 조선은 공식적으로는 양천제였으므로 중인은 공식적인 신분은 아니었고, 실제 사회적 대우로 구별된 계층이었던 것입니다. 양반에 비해 여러 차별 대우를 받았지만 전문기술자로서 실무를 담당했고, 그 중 잡과 합격자들은 일단 관료로 대접은 받았기에 일정의 권리를 누렸고 수완을 발휘하는 자들은 양반 이상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역관들은 사신단에 참여하여 무역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얻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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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왜 공산주의국가를 이어가는거죠?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사는 지 모릅니다. 탈 북민들의 이야기만 들어 봐도 알 수 있지요. 북한에서는 인터넷 접속도 우리나라 인터넷은 차단 당하고 중국보다 더 언론 감시가 심합니다. 교육 자체가 초등 학교 때 부터 공산 주의 사상이 민주주의 사상 보다 더 위대 하다고 배우며 그렇게 성장 합니다. 물론 평양에 살거나 고급 간부들은 한국이 더 잘 살고 경제력도 우수 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것을 모르고 살아 갑니다. 사정을 모르니 부러워할 이유도 없지요. 워낙 김정은 독제 체제가 잘 만들어져 있어서 그것을 뒤엎을 만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힘들지요. 그래서 철저한 통제 속에 아직도 북한은 생존을 해오고 있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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