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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따운안경곰70
아리따운안경곰7023.05.09

조선의 신분중 하나인 중인은 어떤 신분이라고 할 수 있나요?

조선시대의 신분제도중에서 중인이라는 신분은

흔히들 알고 있는 양반과는 어떤 다른 신분적 차이가 있었나요? 중인들도 양반은 아니지만

과거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가진

사회계층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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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9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9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중인은 양반과 상민의 중간 신분으로,

    현대에서는 전문직이어서 인기가 좋은 직업을가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중인계층에는 역관 (통역관) 율관 (법조인) 천문관 (천문학자) 서리 (공무원) 의관 (의사) 화원 (화가) 등이 중인의 신분이었습니다.

    중인들도 과거시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중인 중에서도 서얼만 문과 응시가 제한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인은 조선 시대에 양반과 상민 사이에 있었던 신분 계층입니다.

    조선 시대에 지배층인 양반과 피지배층인 상민(평민) 사이에 있었던 중간 계층의 신분을 뜻한다. 주로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하급 관리들이 중인에 속했다.

    조선 초기만 해도 신분은 크게 양인과 천인(천민)으로 나뉘었다. 양인은 양반과 상민을 뜻했고, 천인은 노비나 잡척(잡직에 있던 사람)이 속했다. 그러다 사림파가 정권을 잡은 조선 중기 이후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관청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중인 신분이 만들어졌다. 본래 상민이었으나 차츰 지위가 높아진 사람을 중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중인은 과거 제도에서 잡과 시험에 합격해 기술관이 된 화원, 역관, 의관 등이었다. 이에 더해 본처가 아닌 첩에게서 얻은 자식을 뜻하는 서얼, 관청에서 일하는 하급 관리인 서리, 지방 관아에서 일하는 하급 관리인 향리도 중인이었다. 이들은 주로 양반을 도와 일반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했는데, 신분과 직업은 자식에게 물려주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중인 - 조선 시대에 양반과 상민 사이에 있었던 신분 계층 (한국사 사전 1 - 유물과 유적·법과 제도, 2015. 2. 10., 김한종, 이성호, 문여경, 송인영, 이희근, 최혜경, 박승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인은 대체적으로 잡과에 급제하였던 기술 관리들을 말합니다.

    잡과에 급제해도 벼슬을 받기는 하지만, 문,무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대접을 받았으며

    사대부로 대접 받지 못하는 이들을 가리켜 중인이라 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중인은 중간 지배층이었습니다. 중인에는 서얼이 있습니다. 서얼은 양반과 비양반 사이의 소생으로 홍길동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양반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한품서용이라고 과거시험과 괸직진출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대체로 기술직입니다. 의관 즉 의사, 남반 은 궁중에서 일하는 환관부터 다양하게 있었고, 역관 즉통역관, 등이 있었습니다. 기술직은 취재라 하여 간단한 시험을 거쳐 채용되었습니다. 이들도 현실적으로 당상관 이상이 되기 어려웠는데 허준 같은 예외적 인뮬도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엄재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 양반과 상민 사이에 있었던 신분 계층이

    중인 입니다

    본래 상민이었으나 차츰 지위가 높아진 사람을 중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과거 제도에서 잡과 시험에 합격해 기술관이 된 화원, 역관, 의관, 관청과 지방 관아에서 일하는 하급 관리인들도 중인 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신분제는 양반, 중인, 상인, 천인의 4계급 신분입니다.

    이런 신분제를 양인과 천민으로 구분하는 양천 제도가 법제화되었습니다.

    양반이 일종의 신분 명칭으로 정착되면서 양반 관료를 보좌하던 중인도 신분층으로

    정착되어 지배층인 양반과 피지배층인 상민 간의 차별을 두는 반상 제도가 일반화되고,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신분제도가 정착됩니다.

    이중 중인은 서리, 향리, 기술, 역관, 서얼들이 직역세습, 행정실무 등을 담당하였습니다.

    중인은 조선 후기를 가면서 과거 시험에 응시하지는 못하지만

    잡과인 주학(산학), 의과, 운과(음양과), 율과에 응시하여 잡과 출신의 중인 집안들이

    세력을 키워갔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인은 조선시대에 양반과 양인의 중간신분계급층이다. 원래 중등 정도의 품격이나 재산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면서 중간신분층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다. 주로 서울 중심가에 살던 역관·의관·산관·율관·화원 등의 기술관을 총칭하여 중인이라 했으나 경외 지역에서 일하는 향리·서리·역리 등의 행정실무자를 포함하여 이르기도 했다. 천차만별의 직역을 가지고 있어서 직역에 따른 사회적 대우와 국가의 반대급부가 달랐고 중인층 내에서도 신분 간의 차이가 컸다. 중인의 지식은 근대사회에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이어서 근대 전환기에 크게 부각되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인들도 과거 시험인 잡과를 볼 수는 있었습니다. 조선은 공식적으로는 양천제였으므로 중인은 공식적인 신분은 아니었고, 실제 사회적 대우로 구별된 계층이었던 것입니다. 양반에 비해 여러 차별 대우를 받았지만 전문기술자로서 실무를 담당했고, 그 중 잡과 합격자들은 일단 관료로 대접은 받았기에 일정의 권리를 누렸고 수완을 발휘하는 자들은 양반 이상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역관들은 사신단에 참여하여 무역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얻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인은 조선시대에 지배층인 양반과 피지배층인 상민 사이에 있던 중간 계층의 신분으로 주로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하급 관리인들이 중인에 속했습니다.

    중인은 과거제도에서 잡과 시험에 합격해 기술관이 된 화원, 역관, 의관 등이었고 이에 더해 본처가 아닌 첩에게 얻은 자식을 뜻하는 서얼, 관청하에서 일하는 하급 관리인 서리, 지방관아에서 일하는 하급 관리인 향리도 중인이었고 이들은 주로 양반을 도와 일반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했는데 신분과 직업은 자식에게 물려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