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와 재즈를 어떻게 구분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블루스와 재즈는 사실 똑같이 흑인 음악이고 비숫한 면이 많습니다. 다만 재즈는 아프리카계 흑인 음악에 유럽등에 다른 형태의 음악이 더해진 퓨젼음악에 더가깝고 블루스는 오리지날 아프리카계 흑인 들이 미국남부에 노예로 팔려와 그 고닮음과 힘든 삶을 노래한데서 출발한 우리로 따지면 아리랑과 같은 음악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blue 라는 말은 슬픔이라는 뜻도 있지만 Blues 라는 음악은 어떠한 고통속에서도 희망을 소망하는 긍정의 음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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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을 어떻게 판단하는게 맞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속의 한 인물을 평가할때 다양한 평가가 나오는 것은 보는 주관적 관점에 따라서 일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흥선 대원군이 쇄국정치를 통해 조선이라는 나라를 망친 장본인 처럼 생각할수도 있고 또는 외세에 굴하지 않고 자주적인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애국주의자라고 볼수도 있는 것 처럼 말이지요. 태종 이방원도 보기에 따라서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으로 볼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왕권 강화를 통해 정국을 안정시키고 국방을 강화하는등 긍정적인 측면도 많이있었지요. 결론은 역사속의 인물에 대한 판단은 결국 여러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판단해 내가 어떻게 이를 받아들이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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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군주의 이름에 '조' 혹은 '종'은 어떻게 붙여지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역사 속 왕의 이름을 보면 뒤에 '조'가 오기도 '종'이 오기도 하는데요. 이는 후대의 후손들이 붙여주는 호칭인데 '묘호'란 왕이 죽은 후에 후손들이 붙이는 이름이고 창업한 왕은 조(祖), 왕조를 유지한 왕은 종(宗)이 기본 관례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고려 왕 계보 중 '조'를 쓰는 건 건국왕 태조가 유일하고 나머지 왕들은 전부 종입니다. 그러나 예외 없는 법칙은 없둣이 , 고려 왕 계보를 보면 이원칙이 잘 지켜지나 조선 왕 계보부터 이 원칙이 무너집니다. 조선애서 처음 이 관례를 어긴 묘호는 세조입니다. 훗날 세조의 묘호를 논할 때 아들인 예종이 '조'를 붙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선왕인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그 뒤에 등극한 새로운 왕이니 새로운 왕조를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이죠. 거기에 세종의 정신을 이었다는 의미로 세종의 세(世)가 더해져 '세조'라고 쓰게됩니다. 이렇듯 조선 시대에는 왕권을 강화하거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후대 왕이 선대 왕의 묘호를 종에서 조로 높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바로 영조, 정조, 순조도 원래는 영종, 정종, 순종이었지만 철종이 순종을 순조로 높이고 고종이 직계 혈통인 영종과 정종을 영조와 정조로 높이게 됩니다. 이렇듯 종,조의 구분은 후대왕의 의지에 따라서 결정되기도 해서 약간의 혼란이 일어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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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은 왜 20년을 주기로 돌아올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행은 정말 돌고 돕니다. 이는 비단 옷 뿐아니라 자동차,음악,영화 거의 모근 분야에서 적용된다고 할수 있지요. 이를 네트로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네트로라고 함은 과거에 대한 향수, 복고풍등의 의미로 쓰이는데 그럼 MZ세대는 왜 자신들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예전 스타일에 열광할까요? 이를 뉴트로의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즉 예것에 새로운 new 가 더해졌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복식학자 제임스 레이버는 유행은 30년마다 매번 주기를 가지고 반복된다라고도 했습니다. 이를 래이버의 법착이라고도 하지요. 20년이던 30년이던 유행은 정말 돌고 도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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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주이씨들은 모두 이성계의 후손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씨 이한이라는 사람이 전주 이씨의 시조입니다.AD754년도의 인물로 추정되구요.『선원계보』에 따르면 신라 말기 사공을 지냈다고 하지요. 전주 이씨라고 전부 다 이성계의 후손이라고 예기할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성씨는 1930년대에 일제가 세금을 걷기위해 성이 없던 당시의 노비신분등의 사람들에게도 성씨를 신청받아 당시 김,이,박씨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도 있고 해외에서 귀화해서 성씨를 부여받은 경우도 있고 여러가지 다양한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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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는 왜 얼굴노출하는것을 꺼려했고 왜 사진이없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성황후는 사진찍는것과 초상화의 모델이 되는 것도 아주 아주 싫어 했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 찍어 사진이 넘치는 시대지만 그당시는 사진 한장 찍으려면 오랜 시간동안 포즈를 취하고 준비할 것도 많았지요. 암튼 그녀는 사진찍히는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이런 이유로 일본자객들이 명성황후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고 하네여. 일본자객들은 한번도 명성황후를 본적이 없고 사진도 없었기 때문이죠. 아마도 그녀의 자유 분방하고 담답한 것을 못참는 성격이였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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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로마인들은 왜 불편하게 누워서 먹었던걸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로마에서 사람들이 연회를 즐길때 누워서 먹는 습관은 아시아의 앗시리아 왕국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로 유입되고 로마에게까지 흘러들어간 것이지요.그리스에서는 여러사람이 술과 음식을 누워서 먹는 것을 심포지움(Symposium)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회의라는 뜻으로 쓰이지요. 당시 그리스는 최고 문화를 자랑했고 로마인들이 이런 유행을 따라한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였다고도 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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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성씨는 몇개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60년 대한민국 총 성씨는 258개 였는데 2015년 55년만에 5,582개가 되었으니 22배나 증가했네여.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외국에서 귀화하여 생긴 성씨까지 합하면 5,582개의 성씨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이 중 한자로 표기할 수 있는 성씨는 1,507개이고, 한자가 없는 성씨는 4,075개로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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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이 무덤이 었다는 사실을 증명 할수있는 근거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부족장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지만 꼭 지배자의 무덤인 것은 아니였던 것 같습니다.고인돌에서는 어린 아이, 여자, 노인들로 보이는 사람의 뼈도 발견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던 토기나 돌로 만든 도구들로 보아 크기가 작은 고인돌은 아마도 평범한 일반 사람들이 묻혔을 것으로 보입니다. 크기가 큰 고인돌은 부족장이나 우두머리이고 그 주변의 작은 고인돌들은 마을 사람들 모두를 위한 공동묘지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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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를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데도 있는데 왜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터어키는 한국전쟁때 14,936명을 한국에 파병 미군 제 25사단 소속으로 각종 전투에 참가해 우리를 도와 싸웠습니다. 그 이후로 터어키를 형제 국가로 부르고 있습니다. 근우리 전투후에 미군과 우리군에게 수훈장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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