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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세계 패권을 쥘가능성은 앞으로 얼마나 될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사실 시진핑이 삽질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을 배워야 한다. 중국이 미국을 2027년이면 앞서게 된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등의 많은 예상이 있었지만 결국 그러하지 못하고 있고, 영원히 미국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죠. 시진핑은 오로지 자신을 우상화하고, 자기 자신이 절대권력으로서 군림하기 위해 그동안 집단지배체제를 무시하고 독재를 하고 있으며, 경제발전을 위한 국가정책 보다는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시장경제 체제를 만들고, 그동안 중국 GDP의 30%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부동산경제를 무너뜨리는 등 여러가지 행동들 때문에 지금은 중국이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고 그 누구도 예상하지 않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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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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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기 우리나라 발전할수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경제발전을 하나의 이유만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체적인 경제계획이 좋아야 하며,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국민들의 희생이 있어야 하고, 외국에서 지원되는 자금을 잘 사용해야 하는 등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다 어우러져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우 박정희 이전 부터 경제개발 계획이 계획되었고 이를 박정희가 정권을 가져오면서 그 경제개발계획이 진행되었으며, 이러한 계획에 국민들이 갖은 탄압과 고통에서도 묵묵히 일하며 기반을 닦았죠. 또한 베트남전쟁에 한국군이 파병되고, 독일의 탄광, 간호사 등으로 파견되어 외화를 벌어왔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 국가의 계획도 중요하지만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국민들이 가장 중요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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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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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수는 왜 남자들만 했던 건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숙수는 우리가 단순히 생각하는 임금을 위해서만 요리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임금의 하루 5끼를 준비해야 함은 물론이고 중간 중간 다과를 준비하기도 해야 했으며, 연회를 여는 날이면 수백명의 음식을 준비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만든 음식 때문에 임금이 병이 나면 목숨을 내어놓아야 했기에 숙수를 맡으려는 자가 없었으며 도망을 가기도 했다고 하죠. 그만큼 24시간 대기하며 육체적인 노동과 정신적인 희생이 있었던 자리였기에 숙수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맡았으며, 엄연히 잡직으로서 허울 뿐이긴 하지만 관직도 갖고 있었기에 정상적으로는 관직을 가질 수 없는 여성이 숙수가 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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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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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중국 자체의 완전한 붕괴 시에 내전 가능성을 어느정도로 점쳐보십니까?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저보다 훌륭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부분을 좀 써보도록 할게요. 중국은 마오쩌둥 이후에 권력이 1인에게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다인권력체제를 만들어서 운영했습니다. 그러면서 보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 노력했던, 세계의 공장으로서 엄청난 경제성장을 만들어내면서 미국을 추월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부상할 정도였죠. 그런 중국에게는 지금은 힘들지만 희망찬 미래가 있다라는 목표가 있었고, 이러한 고생을 국민들이 희생을 하더라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핑핑 시진핑이 독재를 꿈꾸면서 모든 희망들이 물거품이 되었죠. 그동안 도시와 농촌의 경제, 교육 불균형, 권력에 아부하는 자들은 부자가 되고, 일반 국민들은 월급이 50만원이 안 되며, 모든 경제와 정치, 사회가 시진핑에 의해서 이루어지니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국가를 운영하니 한계가 찾아온 것이죠. 이제는 국민 모두가 미래의 부자라는 목표가 아니라 오로지 시진핑이 독재를 할 수 있는 구조만을 만드니 중국은 이제 중국국민들은 노력하지 않게 되고, 희생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일당독재를 하는 시진핑에 대한 저항이 발생하게 되고 시진핑은 다시금 이러한 불만을 해외로 돌리기 위해 대만을 건드리고 홍콩을 억누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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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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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친일행보와 역사관련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대만의 경우 중국에 의해 영향력을 크게 받고 있지만 사실 대만은 독립적인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통일왕조가 들어서면 간섭이 가해졌으며, 수탈을 하기도 했었으며 장제스 군이 도망쳐 왔을 때에도 엄청난 고난이 찾아왔죠. 그렇기에 차라리 서양이든, 일본이든 식민화 시킨 국가들이 자신들의 체면 때문이라도 대만섬을 중국 본토인 보다는 훨씬 평화로웠다라고 느끼기 때문이죠. 얼마나 중국 본토에서 괴롭혔으면 자신들을 정복한 해외국가를 더 좋아한다니 그게 말 다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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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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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종식 후 세계질서 변화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고 성장했던 소련과 미국 사이에서 만들어진 냉전은 결국 소련이 붕괴되며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에 의한 세계질서가 유지 되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각 나라들마다 가지고 있던 경제적인 문제들이 극단으로 치닿게 되면서 점차 자국우선주의, 극우성향 등이 힘을 얻고 경제적인 위기를 외부의 적을 이용해서 타개하려는 움직임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의 일환으로 러시아는 나토의 접경지역들을 위협하고 있으며, 중국은 대만을 먹기 위해 전쟁을 준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죠. 그러니 더욱 많은 국가들이 방어를 위해서, 경제적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점차 극우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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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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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의 위생에 대해서 궁금한점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혹시 인도 관련된 영상을 보셨을지 모르겠네요. 인도는 집안에서 생겨나는 모든 오물들을 길거리에 버려버리는데요. 그러면서 최악의 위생을 보여주고 있으며, 화장실도 집안에 갖추지 않고 강가 또는 해변가에서 볼일을 처리하죠. 이런 이유가 단순히 더러워서가 아니라 힌두교 같은 종교적인 관습에서 집안에 더러운 물건을 두면 부정이 탄다는 생각이 있으니 쓰레기통을 집안 두지 않으며, 화장실도 집안에 두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죠.이와 달리 중세시대는 세균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냄새가 나는 것을 향수나 향초로 덮으면 공기가 깨끗해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특히나 중세는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인구가 밀집되고 위생을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 자체가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온갖 오물들을 도로에 버렸고 이는 비가 와도 제대로된 배수가 되지 않는 길거리가 똥과 오줌, 쓰레기로 넘쳐나게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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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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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는 역사적으로 노예에 대한 문제들이 많았는데 왜 굳이 벨기에는 노예를 그렇게 심하게 대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벨기에는 레오폴드2세가 콩고를 엄청난 학살로 다스렸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식민지로 삼을 경우 벨기에 정부에 의해서 관리될 것이기에 레오폴드2세는 자신의 개인적인 자산을 늘리기 위해서 콩고를 자유국으로 두고 철저히 수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프리카 나라가 그러하듯 값비싼 상아와 고무 등을 채취하기 위해 콩고민들을 강제노역하게 했으며 정해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상상도 못할 체벌을 하였죠. 그러다가 도망이라도 갈라치면 손목을 자르고, 발목을 자르며 다른 콩고민에게 본보기를 보였습니다. 이런 미친 행동은 결국 다른 선교사들이라 여행가들에게 발각되었고 콩고는 벨기에 정부의 식민지령으로 편입되면서 레오폴2세의 미친 행각에 제한이 걸린 것이죠. 물론, 벨기에 정부의 식민지령이 되어 국제적인 감시를 받고, 법칙에 따라 다스리긴 했으나 암암리에 과거의 식민 노예를 부리는 습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못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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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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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외에도 대통령 부부가 구속된 사례들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윤석렬과 김건희가 그 어렵다는 대통령 부부가 나란히 구속되는 모습을 연출하였죠. 윤석렬은 말도 안 되는 계엄령으로 김건희를 지키고, 자기를 화나게 만든 민주당 관련 인사들을 정리하려 하였죠. 김건희의 경우 엄청난 이권에 연루 되어 구속된 것이죠. 이는 최초의 일이며 앞으로도 절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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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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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고서적들의 기록방식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과거에는 대나무를 이용해서 기록을 했었습니다. 죽간이라 하여 대나무를 세로로 쪼개어서 가로로 줄을 걸어 말아서 기록하고 보관하였죠. 그러니 자연스래 기록을 대나무 방향으로 세로로 기록하였던 것이 훗날 종이가 발명 되어서도 세로로 기록하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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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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