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가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 강화도로 피난을 선택했습니다. 실제로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 강화도로 피난하였으며, 산성 방어가 성공적이라 후금도 급히 강화를 맺고 퇴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병자호란으로 청군이 기병을 이용해 빠르게 진격해와 강화도 피난이 불가능했습니다. 청군은 12월 9일 압록강을 건너 12월 11일 평양, 그리고 12월 14일 한양의 서대문에 이르러 인조가 한양을 출발하려 했을 때 이미 강화도로 향하는 홍제원이 차단되었습니다.
결국 인조는 최명길을 보내 시간을 끌게하고 한양 근접의 남한 산성으로 방향을 전환하였습니다. 남한 산성은 한양 탈환의 거점이며, 험준하여 장기전에 유리했습니다.
하지만 청군의 포위와 겨울철 식량 고갈로 45일만에 삼전도 굴욕으로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