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근로자의 날이 이전에는 3월 달이 았다는데 왜 5월로 바뀐건가요??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매년 5월 1일은 메이데이라 불리는 국제적 노동절이기도 하다. 근로자의 날은 그 명칭과 날짜에 있어서 변경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은 1958년 이래 대한노동조합총연맹(약칭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해 행사를 치러오다가 1963년 4월 17일 단행된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명칭을 근로자의 날로 바꾸고 유급휴일로 정했으며, 1994년에 이르러서는 근로자의 날을 메이데이와 일치하는 5월 1일로 변경했던 것이다.오늘날 국제적으로 기념되고 있는 노동절의 기원은 자본주의가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던 18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6년 마르크스가 제1차 인터내셔널 강령에서 8시간 노동제의 법제화를 요구한 이래 8시간 노동제의 문제는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이행하던 19세기 후반 세계 노동운동의 중심적 문제였다. 한편 이러한 요구가 미국의 노동운동에도 수용되어 광범위한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1884년 5월 1일 미국의 방직노동자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쟁의를 시작하고 각 노조가 이에 호응하여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어 1886년 5월 1일 시카고의 '노동조합연합회'를 중심으로 8시간노동·8시간휴식·8시간교육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죽거나 부상당하고 체포되었다. 미국 노동자의 시위는 1889년 파리에서 열린 제2차 인터내셔널 대회에 보고되었다. 이 대회는 미국 노동자의 5월 1일 시위를 기념하여 이날을 국제적인 시위운동의 날로 결정했다.한국의 노동계급은 일제강점기에는 각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약칭 전평)를 중심으로 5월 1일을 노동절로 정하여 행사를 치러왔다. 그러나 전평이 미군정의 좌익 탄압에 의해 와해됨에 따라 형식적 행사만 치러져왔으며,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그 명칭마저도 '근로자의 날'로 변경되었다. 이는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등장한 군사정권이 민정으로 이양하기 위한 체제정비를 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1963년 4월 17일 군사정권은 노동조합법·노동쟁의조정법·노동위원회법 등의 개정을 통해 노동통제의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노동', '노동자'라는 개념 속에 내포되어 있는 계급의식을 희석시키기 위해 '근로자'라는 개념으로 바꾸었는데 이때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도 공포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노동계급의 진출이 확대되고 노동운동이 급격히 활성화되면서 대한노총이 주도하는 종전의 근로자의 날(3.10) 행사와 의미는 형식화되고 5월 1일 메이데이가 복원되어 행사가 이루어지는 이원화 양상을 보였다. 1994년 1월 25일 정부는 근로자의 날을 5월 1일로 변경했으나 명칭은 그대로 두었다.
Q. 49제지낼때 제사음식은 어떻게 준비하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십구재(四十九齋)는 불교에서 유래한 장례 의식의 하나로 고인이 죽은 후 초재부터 1주일(7일)마다 7번씩 지내는 재(齋)를 말합니다. 이 사십구재가 장례절차가 간소화하면서 탈상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산소에서 지내기도 합니다.그래서 제사의 일종으로 인식해서 49재(齋)를 49제(祭)로 쓰기도 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1) 준비하시려는 제수로도 충분하고 넘쳐 보입니다. 제수의 수량이 성의의 표현이라면 많이 할수록 좋겠지만 기제사에서 꼬막이나 소불고기는 잘 안쓰는 편입니다. (2), (3) 전통적으로 제수는 홀수개를 올리니 전, 과일, 조기의 숫자도 3, 5, 7에 맞추면 되겠습니다. (4) 49재도 제사이므로 산소에서 하는 성묘처럼 절을 하시면 됩니다. (5) 제사 후 음식을 나눠먹는 풍습을 “음복”이라 하지요. 산소에서 쓴 제수 음식은 가져와서 고루 나누어 드십시오 .명절에 산소에 성묘가는 준비와 같이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Q. 축하할때 왜 케이크를 먹게 됐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케이크(cake)의 기원은 과자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과자는 신석기 시대부터 만들어 먹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우묵한 돌그릇에 밀가루와 우유를 넣고 섞은 뒤 그대로 굳혀 떼어낸 것이 바로 과자의 기원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변화와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과자는 가토(gateau, 진과자), 갈레트(galette, 팬케이크), 플랑(flan, 찐 과자) 등으로 발전했다. 기원전 2000년경 이집트인들은 이스트를 활용해서 케이크를 구웠고, 당시 사람들은 이집트인들을 '빵을 먹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그 후 8~9세기의 그리스에서는 이미 달걀, 유지를 넣어 만든 케이크가 100여 종에 달했다. 빵과 케이크의 명칭이 명확하게 분류된 것은 로마 시대부터였다고 하며, 11~13세기에는 십자군 원정으로 동양에서 설탕과 각종 향신료가 유입되어 케이크의 질과 맛이 높아졌고, 산업혁명을 통해 대중화되었다.
Q. 우리나라 최초의 신발 회사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제시대인 1920년 우리나라 최초의 신발회사인 "대륙고무공업"이라고 생겼습니다.처음의 생산제품은 물론 고무신이었답니다.외국상표처럼 상표가 특별히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그리고 그 후 여러 신발회사들이 생겼습니다.삼화(범표, 1931), 태화(말표, 1947), 국제(왕자표, 1949), 동양(기차표, 1953), 진양(진양, 1963) 등은 고무화에서 포화와 케미화로 품목을 확대하면서 제조공정을 개선하고 제조기술을 축적해가면서 OEM 납품을 통해 세계 시장에 수출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