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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동연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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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전문가
보가9 그래픽 디자인 및 영상 편집 총괄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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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불교 성불하십시오는 어떤 말인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귀신은 영가라고합니다 이우리가사는 중생계인 인간세상을떠나 이시방법계에는 수없는 주인이있고 또한주인이 없는 유주무주 허공배회 애혼영가가 많습니다 사람이죽으면 자신이 살면서 지어온 업에따라 다음생을받습니다 선근공덕이많으면 극락세계에서 왕생하는것이지만 악업이많으면 삼악도 에떨어져 지옥고를 받습니다 또한 영가가 중생계의 흐름을 모르고 이세상에 집착이깊어서 이세상을배회하는 영가도있습니다 그래서 절에서는 매년 백중인 음력 8월15일날 삼보님 과 불보살님들의 증명으로 영가들에게 법식을베풀어 영가천도식을합니다 영가를 이번생의 집착과 인연을 끊고 정토세계로 왕생하게하는것을 천도라고합니다 하여 천도하여 불법의 진리를깨달은 영가는 극락정토세계로가서 아미타불부처님의 법문을듣고 성불하게됩니다 즉열반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영가는 이제성불하여 보살이되에 인간세상과 삼천대천세계와 십만억국토를다니면서 그세계 중생들을제도하십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이세상중생 을제도하시고지장보살께서 지옥의 유명계 중생들을제도하는것처럼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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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무지개다리라는 말은 어디서 유래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죽음의 완곡한 표현. 주로 키우던 반려동물의 죽음을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라고 표현한다.​이 표현은 1980년대에 미국 혹은 영국에서 만들어진 저자 미상의 시에서 가져온 말이다. 북유럽 신화의 비프로스트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는데, 무지개 다리라는 말이 원래 '이상향으로 가는 천상의 다리'라는 개념으로서 고대부터 널리 쓰였던 관용구임을 감안하면 확률은 높은 편이다.​이 시에서는 천국과 지상을 이어주는 무지개 다리가 있는데 어떤 사람에게 사랑받던 동물은 죽으면 항상 먹을 것이 있고, 따뜻하며, 다시 젊어지고, 건강해지는 초원으로 간다. 이 동물들은 평화롭고 행복하게 뛰놀지만 항상 자신을 아껴주던 주인을 그리워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주인이 죽으면 만나서 함께 무지개 다리를 건너 천국으로 가며 다시는 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무지개 다리를 건넌다는 표현 외에도 "강아지/고양이별로 떠나다"란 표현이 자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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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화약은 역사적으로 어느나라에서 제일 먼저 쓰기 시작했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최초로 대규모 전투에서 쓰인 사례는 1346-1347년 발생한 칼레 공성전에서 영국군이 쓰던 것입니다. 화약 자체는 십자군 시대에 동방으로부터 들여와서 이미 널리 알려진 상황이었고, 십자군도 목함에 화약을 넣고 던져서 터트리는 무기로 쓰기도 했습니다. 나무파편도 날리고 했으니 최초의 수류탄이었죠.최초의 화약무기는 송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면 최초의 화약무기는 화약의 힘으로 날아가는 화살이나 공에 화약을 넣고 던지는 등의 용도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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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그나카르타란 어떤 뜻인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3세기 잉글랜드 존 왕의 무능과 독단적인 행보에 귀족들과 백성들이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문서를 만들어 국왕에게 요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대헌장, 마그나카르타 입니다.​대헌장은 귀족과 자유민의 권리와 자유를 재확인하고 문서화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데, 오늘날 법원에서 문서화된 기록이 없으면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많듯이 이때에도 왕이 약속하고 어기는 경우가 많았던터라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계약서라고 보시면 됩니다.​즉, 왕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도록 제약이 가해진 첫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대헌장은 왕의 권한을 나눈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해서 후일 영국이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을 거쳐 권리청원과 권리장전을 통한 입헌군주제로 나아가게 된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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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 대표사상은 유교인데 왜 불교는 탄압받지않았을까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왕조는 건국 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3대 정책을 건국의 이념으로 내세웠습니다. 첫째, 외교정책으로서 사대교린정책, 둘째, 문화정책으로서 숭유배불정책, 셋째, 경제정책으로서 농본주의를 내세웠습니다. 조선은 건국이념에서 볼 수 있듯이 불교를 배척하는 정책을 시행했는데요 그 이유는 일단 유교를 국가이념의 근간으로 세우고자 한 의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고려 말 신진사대부들이 권문세족들과 대립하면서 권문세족의 이념인 불교를 부정하였고 위화도회군 이후에는 온건파 사대부를 대응하여 정도전 등 급진파 사대부들이 불교 자체를 비판하면서 배불정책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이후 조선이 성립되면서 정치이념으로 유교가 정착되고 불교를 아예 배척하게 되었죠. 그러나 불교는 고려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주류적 사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사회에 깊게 뿌린 내린 사상입니다. 그래서 국가의례를 제외한 종교문화적인 부분에선 여전히 불교가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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