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개봉된 영화관은 어디일까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국 최초의 영화전문관은 1909년 개설된 '광무대(光武臺)'랍니다. 1898년 개설했던 '동대문활동사진소'를 1907년 6월부터 광무대라 하였습니다. 초기에 포병열차,기차,잔 다르크 등의 영화가 상영되었답니다.그 뒤 원각사(圓覺社) ·단성사(團成社) 등 영화관이 급증하였습니다.영화관과 극장은 정확하게는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겠죠.(백과사전 발췌)한국 최초의 실내 상설극장이며, 황실극장격인 협률사(協律社)가 개설된 것은 1902년(광무 6)이었다. 이 해 12월 고종 황제의 등극 40년을 맞아 정부에서는 ‘어극 40년(御極四十年)’의 칭경예식(稱慶禮式)을 거행하기 위한 준비의 하나로 서울 서대문구 신문로 새문안교회 자리에 극장시설을 마련하여 기생 ·재인(才人) 등을 연습시킨 후, 수교국가(修交國家)의 원수(元首)들을 초청하였다. 그 후 1908년, 당시 《대한신문》 사장인 작가 이인직(李人稙)이 “우리 나라 연극을 개량하기 위하여 신연극을 시작할 목적으로” 궁내부의 허가를 얻어 협률사 자리에 원각사(圓覺社)를 창설, 여기에서 한국 신연극의 첫 상연작품인 이인직의 《은세계(銀世界)》가 공연되었으며, 원각사의 수용인원은 2,000명 정도였다. 이보다 앞서 1907년 기생조합(妓生組合:券番)이 생김에 따라 기생 ·광대 ·재인들의 활동무대로서 단성사(團成社) ·장안사(長安社) ·연흥사(演興社:朝鮮劇場) 등 여러 극장이 생겨, 연흥사에서는 유명한 임성구(林聖九)의 《육혈포강도(六穴砲强盜)》가 상연되었으며, 이로써 이들 극장은 흥성기를 맞이한 신파극(新派劇)의 공연무대가 되었다. 활동사진(영화)은 흔히 원각사에서 상영되었으나, 최초의 영화전문극장으로 등장한 것은 동대문 전차차고 근처에 설치된 ‘활동사진소’이다. 이 영화관은 한국전기회사에서 운영한 전차의 유객(誘客)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다. 여기에서 상영된 초기의 필름들은 《포병열차》 《기차》 등의 시네마토그래프, 《뉴욕의 대화재》 《잔 다르크의 화형(火刑)》 등의 바이타스코프로 모두 단편영화였다. 1919∼20년 사이에 생긴 영화 상영극장은 서울의 경성극장(京城劇場) ·황금관(黃金館) ·희락관(喜樂館) ·우미관(優美館) ·단성사 등 12관, 지방의 국제관(부산) ·마산극장 ·만경관(萬鏡館:대구) ·대전좌(대전) ·원산극장 ·계락관(階樂館:평양) 등 15관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 연극계에 공헌한 것은 35년 연극 전문극장으로 등장한 동양극장(東洋劇場)이다. 여기에서 한국의 신극이 성장하고 꽃을 피웠다. 광복 전까지 전문적인 연극 극장은 동양극장뿐이었으며, 후에 부민관(府民館:시민회관 별관) ·명치좌(明治座:市公館) 등이 등장하여 당시의 대표적인 극장이자 영화관 구실을 하였다. 광복 후에는 급격히 증가한 영화의 수요에 따라 영화관이 급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