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백년전쟁이 프랑스 농민과 귀족 계층에 미친 사회적 변화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백년 전쟁의 주요 원인은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왕위 계승 문제였습니다. 프랑스 왕 샤를 4세가사망한 후, 그의 조카인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가 왕위를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프랑스 귀족들은 샤를 4세의 사촌인 필립 6세를 왕으로 세우면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또한 두 나라의 경제적 이해관계 또한 전쟁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특히 플랑드르 지역의 무역과 직물 산업은 잉글랜드와 프랑스 모두에게 중요한 경제적자원이었고, 이를 둘러싼 경쟁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이후 1453년, 보르도 전투에서 프랑스균이 승리하며 백년 전쟁이 종료됩니다. 이 전투는 잉글랜드의 프랑스 내 영토가 거의 전부 상실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전쟁의 결과로 프랑스는 중앙집권적인 국가로 발전하게 되며, 왕권이 강화되었습니다. 또한 백년전쟁은 프랑스의 사회 구조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농민 전쟁과 같은 사회적 불만이 커졌으며 프랑스는 전쟁 중에 국민적 정체성이 강화되기도 했습니다.
Q. 프랑스가 독일땅 차지하려고 싸울때..영국은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영국의 식민지 확장은 16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584년, 영국의 탐험가 월터 롤리 경이 북미 대륙에 첫 번째 영국 식민지인 로어노크 식민지를 설립하려 했으나, 이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1607년, 제임스타운이 설립되면서 영국의 북미 대륙 식민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영국 동인도 회사는 1600년에 설립되어 인도 아대륙과 동남아시아에서의 상업적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18세기 중반, 플라시 전투(1757) 이후 영국은 인도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며 결국 인도를 영국의 '왕관의 보석'으로 만들었습니다. 인도는 영국 제국의 중요한 식민지로, 경제적, 군사적, 전략적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영국의 식민지 확장은 영국 본국과 식민지 모두에 경제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식민지에서 생산된 자원과 상품은 영국의 산업 혁명을 촉진하며 영국 경제에 큰 이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번영은 식민지 주민들의 착취와 고통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Q. 터키가 오스만제국인가요??터키인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13세기 말 오스만 1세가 아나톨리아 북서부에서 건국했으며, 1354년에 유럽으로 건너가 발칸반도를 정복하고 세 대륙에 걸친 거대한 제국을 세웠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며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는 데에 성공하며 그 이름을 널리 떨쳤습니다.오스만 제국은 쉴레이만 1세의 통치기에 절정기를 맞았고, 사회적, 행정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당대 최고의 국가로 떠올랐습니다. 그 강역이 가장 넓었던 17세기 초에는 32개 지방으로 구분되었고, 수없이 많은 봉신국을 거느렸다. 이후 봉신국 중 일부는 오스만 제국에 흡수되고, 일부는 자치권을 허가받아 수백 년 동안 지속되기도 했습니다.현재의 이스탄불을 수도로 지중해 주변 지역 대부분을 통치했던 오스만 제국은 무려 6세기 동안 동방과 서방의 교차점으로 기능하며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다만 지나치게 오랜 평화기로 인해, 18세기 말에 이르자 오스만의 군사력은 점차 방만해졌고, 경쟁국인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에 서구 열강들에게 연전연패하며 그 부실한 체력이 폭로되었고, 유럽의 환자라고 평가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제국을 탈바꿈 하기 위해 탄지마트라 불리는 개혁 정책을 시행하여 19세기 내내 영토가 점차 축소되면서도, 특히 발칸 지역 등에서는 통치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1908년에는 젊은 장교들을 중심으로 쿠데타가 일어나 제국의 황제에게 헌법을 인정하고 입헌군주정을 선포할 것을 강제했고, 5년 후 급진파 장교들이 주축이 된 통일진보위원회가 쿠데타를 일으켜 일당 독재 체제를 선포해습니다. 통일진보위원회가 결성한 통일진보당은 독일 편에 서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내부 결속을 위해 애쓰던 오스만 제국은 아랍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의 싹을 잘라 버리기 위해 아르메니아인, 아시리아인, 그리스인을 상대로 대량 학살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과 동맹국이 패배하자, 오스만 제국은 중동의 영토 대부분을 상실했고, 이 영토는 영국과 프랑스에게 넘어갔습니다. 이후 현 튀르키예의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이 등장해 혼란스러운 국정을 다잡고 오스만 제정을 폐지한 후 현재의 튀르키예 공화국을 건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