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중세 마녀사냥이 가장 악랄했다는 독일 트리어에서 마녀재판 중 어린이가 증인이 된 이유?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독일 트리어에서 벌어진 마녀재판에서 어린이가 증인이 된 이유는 마녀에 대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어떠한 증언이라도 적극 활용하였고,어린아이들조차도 신뢰할 수 있는 증언자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트리어 지역에서는 마녀사냥이 극도로 격렬하게 진행되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서로를 고발하는 분위기 속에서 어린이들도 마녀를 본 적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어른들의 유도 질문에 따라 고발에 참여하였습니다. 때로는 부모가 처형당한 아이들이 고문과 강요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지목하는 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순진함을 ‘사실을 숨기지 않는 증거’로 믿은 점도 그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이러한 사례는 마녀사냥이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무분별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무고한 사람들뿐 아니라 어린이들까지 희생되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Q. 로마를 물리친 아마니레나스 라는 인물은 정체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아마니레나스는 고대 누비아 왕국 중 하나인 쿠시 왕국의 여왕으로, 기원전 1세기경 로마 제국과 맞서 싸운 강인한 여성 통치자입니다. 그녀는 ‘칸다케(Candace)’라는 칭호를 가진 쿠시의 여성 지배자 중 한 명으로, 특히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남하해 누비아를 침공했을 때, 이를 강력히 저지한 인물로 유명합니다.또한 아마니레나스는 로마와의 전쟁에서 남편이 사망한 뒤 직접 군을 이끌고 로마에 맞서 싸웠으며, 일시적으로 로마가 점령한 지역을 탈환하는 등 뛰어난 전략과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전쟁 중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상징하는 동상을 부수고 머리를 쿠시 수도로 가져가 전리품처럼 전시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건은 로마에 대한 강력한 저항과 자존심의 표현으로 해석됩니다.아마니레나스는 여성 통치자로서 전쟁을 직접 지휘하고, 외세에 맞서 자국의 주권을 수호한 드문 사례로 평가되며, 오늘날까지도 아프리카 역사 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입니다.
Q. '조선사편수회'가 어떤 기관이었는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조선사편수회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일본 조선총독부에 의해 설립된 역사 연구 기관으로, 표면적으로는 조선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편찬하기 위한 목적을 내세웠습니다.그러나 실제로는 조선의 역사를 일본 중심의 시각에서 왜곡하고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기관이었습니다.조선사편수회는 일본인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했으며, 일부 조선인 학자들도 참여했지만 실질적인 연구와 집필의 주도권은 일본 측에 있었습니다.또한 조선사편수회는 조선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축소·왜곡하고, 조선이 일본에 예속되어야 했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자료들을 생산하는 활동을 하는데 주력하였다고 합니다.
Q. 중세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성행할 때 시행되었던 고문은?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마녀사냥이 성행하던 중세 유럽에서는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고문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고문은 마녀로 지목된 사람이 실제로 마법을 사용했는지를 밝혀내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공포와 폭력으로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대표적인 고문 방식으로는 손과 발을 묶고 공중에 매달아 떨어뜨리는 ‘현수 고문’, 몸을 조이는 철제 기구를 사용하는 ‘아이언 메이든’이나 ‘스크루 고문’, 뼈를 부러뜨리는 ‘래크’와 같은 장치 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사람을 물에 빠뜨려 가라앉으면 무죄, 떠오르면 유죄로 간주하는 이른바 ‘물의 시험’도 고문과 유사한 방식으로 자주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Q. '불함문화'가 어떤 문화인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불함문화는 주로 현재의 북한 지역, 특히 평안북도와 자강도 일대에서 형성된 청동기 시대의 지역적 고고학 문화를 의미합니다. ‘불함’이라는 이름은 자강도에 위치한 불함산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지역에서 독특한 유적과 유물이 발견됨에 따라 학계에서는 이를 ‘불함문화’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불함문화는 대략 기원전 10세기에서 기원전 5세기 무렵, 청동기 후기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걸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기의 주요 유적으로는 돌무지무덤(적석묘), 석관묘와 같은 무덤 유적이 있으며, 거주지 유적도 일부 발굴되었습니다. 이러한 유적들에서는 비파형 동검, 간단한 토기류, 석기, 청동제 장신구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비파형 동검은 당시 청동기 기술의 발달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불함문화는 고조선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고조선의 북방 지역 문화권 안에서 전개된 하나의 중심적인 문화로 평가됩니다. 또한, 이후에 형성된 부여나 고구려와 같은 북방 민족의 문화와도 일정한 연계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져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따라서 불함문화는 한반도 북부 지역의 선사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며, 한국 고대 국가의 형성과 문화 발전 과정을 연구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