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세종대왕이 어떤 과정으로 우리만의 달력을 만드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대왕은 천문학과 수학 분야에서도 연구를 진행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달력을 제정했습니다. 1432년 7월 세종은 정인지와 정초, 장영실 등에게 천문 기기의 제작을 명하여 간의, 혼천의, 혼상, 물시계인 자격루, 해시계인 앙부일구 등 백성들의 생활과 농업에 도움을 주는 과학 기구를 발명하게 하였습니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천문학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관상감을 설립하였으며, 관상감은 오늘날의 기상청으로 천문학 관측과 연구를 위한 중심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주변국의 역법을 참고하여 역서인 칠정산 내편과 칠정산 외편을 편찬하여 천체 운동을 정확하게 계산함으로써 독자적인 역법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달력은 조선 시대의 농업과 일상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Q. 진시화이 여불위의 아들이라는 설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진시황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그 중 하나는 여불위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 에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기에 따르면, 여불위는 진나라 소양왕의 태자였던 안국군의 아들 영이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이인은 서자 출신으로 왕위 계승 서열이 높지 않았지만, 여불위는 그의 잠재성을 꿰뚫어보고 그를 후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후 여불위는 자신이 총애하던 애첩 조희를 영이인에게 보냈고, 이때 이미 조희는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조희는 영이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들이 후에 진시황이 된 영정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진위 여부가 불분명하며, 사마천이 진시황을 폄하하기 위해 적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Q. 조선시대에서 일식과 월식예측의 정확성이 얼마나 뛰어났나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일식과 월식을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있었고, 이들은 역법에 따라 계산하고 미리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일식과 월식 예측의 정확성은 오늘날에 비해 떨어졌으며, 종종 예측이 틀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조선외에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관측되는 일식에까지 관심을 가졌으며, 일식이 자연현상이라는걸 알면서도 이것이 하늘의 경고라 여겨 예를 갖추어야 해가 다시 온전히 나타날 것이라는 관점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일식과 월식과 같은 천체 현상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관심사였으며, 이를 예측하고 관찰하는 것은 천문학 연구와 함께 국가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예측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 책임자들은 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