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역사학자분들이 보는 잔다르크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백년전쟁의 후반, 프랑스 왕 샤를 6세가 죽자, 이번에는 프랑스 내부에서 권력 싸움이 시작되었다. 샤를 6세의 뒤를 이은 샤를 왕세자를 옹호하는 세력과 샤를 6세의 딸인 카트린 공주를 잉글랜드 왕 헨리 5세와 결혼시켜 왕위를 잉글랜드로 넘기려는 세력 간의 싸움이었다. 겉으로는 왕가와 귀족 간의 권력다툼이었으나 내부적으로 보면 실제로 피해를 입는 것은 아무 상관없는 백성들이다. 프랑스의 백성들은 이유도 모른채 병사로 동원되어 죽어갔고, 프랑스 사람들은 도버해협을 건너온 잉글랜드 군의 횡포에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이 때부터 프랑스 사람들은 이전에는 없었던 뚜렷하지는 않으나 국가에 대한 의식을 하기 시작했고, 애국심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잔 다르크다.
Q. 힌두교는 왜 인도에서만 믿는 종교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힌두교는 인도의 다수 종교이자 민족종교[5][6]이다. 인도 이외에 네팔에서도 다수 종교이다. 네팔은 2008년까지 힌두교를 국교로 삼았다. 2008년 왕정폐지 이후 국교가 더 이상 아니며, 2015년 제정된 헌법에서는 네팔을 세속국가로 규정하였다.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에도[7] 힌두교 인구가 상당하다. 발리 섬에서도 힌두교도가 많은데, 남아시아 밖에서 인도 계통의 이민자들이 아닌 원주민들이 힌두교를 믿는 유일한 사례다. 동남아시아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힌두교는 앞으로도 인도 문명권의 종교로서 오랫동안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단지 해외 선교가 쉽지 않은 교리상[8][9] 인도와 네팔외 해외 전도에는 크게 관심이 없을 것 같지만, 사실 과거에는 인도 문화와 함께 동남아시아로 활발하게 전파되어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참파(베트남 남부). 필리핀 일대에서 힌두교가 상당한 세를 가졌다. 태국 국왕의 라마라는 칭호도 힌두교의 신 라마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역시 해외 전도에 부적합했는지 그 이후로 동남아시아에서는 발리 섬과 인도인 밀집지역을 제외하면 불교와 이슬람에 완전히 밀렸다. 그래도 교류 자체는 계속 이어진지라 어떠한 형태로든 힌두교 문화의 흔적 자체는 남아있기는 하다. 그 밖에도 스리랑카에도 제법 힌두교인이 많이 있으며, 피지, 가이아나, 남아공, 모리셔스[10], 수리남같이 인도인이 많이 사는 나라들도 힌두교세가 크다. 총집계는 10억 명이 넘으리라 보는데 전세계 인구의 13~14% 정도에 해당한다.
Q. 우리나라에 담배가 전래된 역사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담배를 누가, 언제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왔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병사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그때 담배가 들어오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있지요. 영어로 'tobacco'인 담배는 일본에서 '다바코'라 불렸으며, 우리나라로 전해지면서 '담바구' 또는 남쪽 나라에서 들어온 신령스러운 풀이라는 의미에서 '남령초'로 불렸습니다. 이익의 에는 "가래가 목에 걸려 떨어지지 않을 때, 소화가 되지 않아 눕기가 불편할 때, 한겨울에 찬 기운을 막는 데는 담배가 좋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시 사람들에게 담배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습니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전해진 초창기에는 서당에서 훈장과 학도가 맞담배를 피웠으며, 조정의 공신들도 조회시간에 담배를 피웠습니다. 이에 격분한 광해군이 임금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했고, 민간에게 전해져 어른 앞에서는 피우지 않는 것이 예절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나라 왕 중에는 고종, 순종이 애연가로 알려졌고, 명성황후도 종이로 만 담배인 궐련을 즐겨 피웠습니다.개화기 때는 활동사진 전시회 입장료를 빈 담뱃갑으로 받기도 했고, 해방 정국에는 인천에만 사제(私製) 담배 제조소가 4,000여 군데나 있을 정도로 인기 품목이었습니다. 우리 기술로 만든 최초의 담배는 1945년 광복을 기념해 조선군정청 전매국에서 내놓은 ‘승리’입니다. ‘승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이름에는 광복의 기쁨이 내포돼 있습니다. 전후에는 ‘건설’ ‘파랑새’, 1960년대에는 ‘재건’ ‘새나라’ ‘신탄진’, 1970년대에는 ‘새마을’ ‘환희’ 등 출시되는 담배 이름에는 정치, 사회적 상황과 시대상, 정권의 구호 등이 반영됐습니다. 1960년대 담배 표지에는 ‘환영 하이레 세라세 1세 이디오피아 황제 폐하 만세 대한민국 방문’이란 국빈 방문 기념 문구가 들어가기도 했고,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적히는 등 정부의 국정 홍보 수단으로도 활용됐습니다. 1969년에는 청자가 출시됐습니다. 이 담배는 ‘노래는 추자, 담배는 청자’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청자 담배를 피는 남자에게는 선도 보지 말고 시집가라’는 말이 나왔고, 담배 이름을 딴 '청자다방'도 전국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1980년대 출시된 '솔'은 군용 담배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200억 갑 이상 판매돼 국산 담배 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이렇듯 담배에는 시대적 상황과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