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고구려의 주몽은 이름이 주몽인가요? 주몽의 정확한 뜻이뭐죠?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구려의 역사는 고조선 이후 북부여로 이어지고 그 정통성을 이어받은 것은 고구려입니다. 고구려라는 명칭을 사용한 이유로 그를 고구려의 시조라고 하며, 추모 또는 주몽이라고 불리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사실 북부여의 연장이고 북부여는 멸망하지 않고 고구려로 국호만 변경하여 이어졌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 근거를 중국의 사서 에도 볼 수 있듯이 당의 시어사(侍御史) 가언충(賈言忠)이 요동에서 돌아와 전황을 보고하는 중에 “에 이르기를, 고구려는 9백 년을 넘지 못하고 팔십 먹은 당의 장수(이세적)에게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라고 전한 것을 보아 중국에서도 고구려의 시초를 북부여 시대를 통틀어서 900년으로 보고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국정교과서에서는 고구려 700년이라고만 가르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마도 북부여 180여년 의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고 그것을 언급한 의 경우 아직도 논란이 많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광개토태왕비에 있는 비문을 볼 때 "대대로 왕위를 계승하여 17세를 내려와서 널리 영토를 넓히고 호태왕이 되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만약에 추모 혹은 주몽을 1대로 본다면 13세가 되는 것인데 등에서 언급한 북부여의 시조인 해모수를 시조로 본다면 17세가 됩니다. 따라서 유추해보면 북부여에서 국호를 고구려로 변경하였고, 900년간 이어졌던 것이 맞으며 그 시조는 해모수이고 추모 혹은 주몽 때부터 고구려로 국호를 변경하여 이어져 왔으며, 장수왕 때 고려로 국호를 변경하였던 것입니다. 주몽은 부여 때 활을 잘 쏘는 사람을 그리 불렀다고 합니다. 추모는 주몽이 왕이 되고 난 후 개명한 것으로 유추됩니다. 주몽은 활 잘 쏘는 사람, 즉 우두머리, 왕이 될 만한 사람을 지칭하는 명칭이었다는 설과 붉은 주 / 덮을 몽을 써서 대지를 뒤덮는 밝은 빛을 뜻하는 말로 하늘의 자손임을 뜻하는 명칭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고대 북방의 신 전욱을 현몽(어두운 새벽)이라고 하였고, 그가 다스리던 지역을 검은 땅 현토라고 하였습니다. 동이의 신 언황을 자몽(일출되기 직접의 새벽)이라고 하였고, 주몽은 해가 솟아 밝은 아침을 뜻하니 당시 태양을 숭상하던 북부여-고구려의 왕으로서 하늘의 자손임을 강조하는 말이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추모는 추나라(노나라의 추읍) 추 / 소울음 모 를 쓰는데 추나라는 사실 공자, 맹자의 고향입니다. 그들이 동이족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소울음 모에 소는 고대 숭상의 대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추모라는 이름 역시 우두머리라는 뜻이 아닌가 유추합니다. 석가모니의 한자 표기에도 소울음 모를 씁니다. 그리고 고구려 건국 시 주몽 혹은 추모왕을 신적으로 만들기 위해 과거 북부여의 고두막한 단군(동명성왕)의 이야기를 차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주몽이 동명왕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이러한 역사는 사실 교과서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듯 하나 최근에는 많은 중국 등의 사서에 나와있는 사료로 보아 지금의 우리 삼국사와 그 시기의 지리적 위치, 영토 등에 대해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사료가 밝혀지면 바뀌는 것이니까요.
Q. 시각, 청각 장애인들은 어떻게 예술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시각 장애인의 경우 색을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말로 해설하거나 직접 만져보고 촉감으로 그 형태를 유추하는 방법을 활용합니다. 청각장애인은 소리 예술 즉 음악, 소리 미디어 등으로는 감상할 수 없기에 시각적인 설명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미디어아트 듀오인 방&리 전시회에서는 시각 장애인분들을 초청하여 설치된 미술 작품의 공간, 분위기, 개요 등을 아나운서의 나래이션으로 사전 설명하고, 각각의 도우미들의 협조를 받아 직접 만져보고 경험해보는 전시를 진행하였습니다. 전체적인 미디어아트의 스케일이 크기 때문에 그 장면 중 주요한 장면을 미니어쳐로 제작하여 직접 시각장애인들이 그 공간과 대상들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일론 머스크가 개발하고 있는 뉴럴링크를 통해서 뇌와 연결하여 직접 볼 수 없어도, 들을 수 없어도 그 정보를 주입하고 뇌에서 시각화하고, 청각화하여 보고 들을 수 있는 기술도 활용할 수 있다고 하니 기대해 볼 만 합니다.
Q. 왜 우리나라는 설날을 2번 지내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원래 우리의 명절과 절기는 음력을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설은 음력을 기준으로 한 것이 맞습니다. 신라, 고려, 조선 모두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로 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사서에서도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음력 1월 1일에 백성들간에 인사를 하고, 임금이 신하를 불러 잔치를 베풀고, 일월신에게 제사를 올린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음력을 버리고 양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은 양력 1월 1일에 새해행사를 진행하였고, 이를 새로운 설이라고 하여 신정이라고 칭하고, 우리 국민들에게도 신정을 지낼 것을 강요? 홍보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대부분 음력 1월 1일을 전통적인 설로 지내었습니다. 이에 이것을 구분하기 위해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설이라고 하여 옛 구 한자를 써서 구정이라고 구분하였습니다. 여전히 우리의 전통적인 설은 음력1월1일입니다. 신정을 태양력 상 새해의 시작이라 하루를 쉬고, 구정 즉, 음력설은 설날 당일 앞뒤로 휴일을 추가하여 3일을 쉽니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의 설이 언제인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Q. 기독교와 천주교가 역사적으로 분리가된계기는 무엇때문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독교라는 말은 사실 주교(천주교)와 개신교(예수교)를 통틀어서 지칭하는 가장 넓은 개념입니다. 주교(가톨릭)와 개신교는 사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에서 분리된 종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가톨릭이란 말은 '두루 따르는, 모두를 포함한'이란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카톨리코스(Katholikos : 영어 Catholic)에서 온 말인데 '보편적'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하나같이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특히 당시의 유대교에서 분리된 여러 종교 집단들로부터 구분하는 의도도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가톨릭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와 구분하는 종파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이처럼 종교개혁 이후 성경에 대한 견해, 성직자에 대한 인정 범위 등의 차이로 인해 기독교의 종파로서 자연스럽게 의미가 분리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그 종파가 별개의 종교인 것처럼 구분되어 운영되는 것은 안타깝기도 합니다.상기 내용은 일전에 유사한 질문에 제가 답변에 달았었던 내용을 참조하였습니다.
Q. 불교에서 보면 108배라는 게 존재하는 데요~ 108배는 어떤 의미일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불교에서의 108배는 108가지 번뇌를 참회하며 벗어버리기 위해 수행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왜 108배일까요?그것은 우리의 감각 기관을 나타내는 안(눈)/이(귀)/비(코)/설(혀)/신(몸,피부)/의(머리,생각)의 6가지 기관과 그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대상 색(모양과 빛깔)/성(소리)/향(냄새)/미(맛)/촉(촉각)/법(생각의 대상)의 6가지가 과거/현재/미래 세 시기에 나타나므로 과거를 참회하고, 현재를 다스리고, 미래를 다짐하는 의미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기관 6가지 + 대상 6가지 = 12가지 번뇌가 존재하며,그 12가지 번뇌가 3생 즉, 과거/현재/미래 각 시기에 발생하였거나, 발생하고 있고,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니 각 시기마다 12가지 번뇌가 존재하게 되니 총 36개의 번뇌가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3귀가 있습니다. 3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부처께 지심으로 귀의합니다둘째로 법보(불법)께 지심으로 귀의합니다.셋째로 승가와 승보(승려 또는 승려집단)께 지심으로 귀의합니다.따라서 거의 모든 경우에 절을 할 때 3번의 절을 합니다. 그래서 위의 총 36가지 번뇌를 잠재우고 없애기 위한 수행으로 절을 하며 다짐을 하는데 '36가지 번뇌 X 3번의 절 = 108배'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108배라고 하는 것은 다른 불교 문화에는 의미는 같은 것이 있지만, 절의 횟수까지 같은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오랜 시절부터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여 수행의 방법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내용은 비슷하나 108이라는 숫자를 만드는 것에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니 검색엔진에서 찾아보셔서 비교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Q. 서양에는 유화가 발달할수있었던 이유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유화의 시초는 얀 반 에이크(1395년생)라고 보았습니다. 정확히 누가 유화 물감을 발명하고 시작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 에이크 가문이 안료에 섞는 기름을 개발하고 유화를 발전시켰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유화의 시초를 그렇게 보는 것이 현재의 정설인 듯 합니다.색을 내는 안료의 분말을 기름에 섞은 것이 유화 물감입니다. 유화 물감 발명 이전에는 안료 분말에 달걀을 사용하였고 이름 템페라 기법이라고 합니다. 달걀은 그림을 그리던 중 마르는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벌꿀, 아교, 송진, 나무수액, 각종의 기름을 섞어 시도해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것이 이탈리아로 전해졌고, 르네상스 회화가 발전하면서 대부분의 그림들이 유화로 그려지게 되었던 것으로 봅니다. 서양은 유화, 동양은 수묵화가 주를 이루었던 이유는 서양은 처음 그림 등은 양피지나 나무판 등에 그려졌습니다. 아니면 프레스코화처럼 벽면에 그려졌습니다. 그러므로 작품의 보존성에 무게를 두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후 배의 돛으로 사용되던 질긴 재질의 캔버스가 사용되면서 더욱 유화로 굳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에 반해 동양은 일찌기 종이가 발달하였고, 그림보다는 문자의 기록을 위주로 하여 먹을 사용하였고, 자연스럽게 종이에 그림을 그리게 되다 보니 그대로 발림성이 좋은 먹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후 색을 내는 안료를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Q. 로마시대때 가장 유명한 황제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로마 제국의 황제 중 유명한 사람은 아래와 같습니다. 가장 먼저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로마 제국 최초의 황제입니다. 그는 로마 제국의 황제에 대한 정치적 체제를 정립하였고, 놀랄만한 통치력으로 '파크스 로마나' 라고 불리는 로마의 평화 시대를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제국의 성장을 이끈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가 있을 당시는 공화정이었으나 그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이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될 수 있도록 유연한 리더십과 정치력으로 로마 제국을 세운 인물로 지금에 와서는 황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카이사르 전쟁과 공화정 시대의 끝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 등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네로 황제는 로마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황제 중 한 명으로, 그의 잔인하고도 흉악한 행동은 역사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습니다.마지막으로 황제 트라야눌루스는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하나로, 최대 규모의 로마 제국을 만들고 이끌었으며, 그의 군사적 업적과 건설 사업을 추진하여 끊임없이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통치는 로마 역사상의 최고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